2024년 3월 3일 일요일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설니홍조(雪泥鴻爪) - 눈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인생의 무상

눈 설(雨/3) 진흙 니(氵/5) 기러기 홍(鳥/6) 손톱 조(爪/0)

인생이 길다고 한 말은 어디에서나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인생은 행복한 자에게는 너무나 짧고, 불행한 자에게는 너무나 길다’고 한 영국 격언만 제외하고 말이다.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형편이 나아진 이후로는 길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짧은 인생을 덧없다고 여기고, 욕심껏 이룬 부귀와 영화도 부질없다고 깨우치는 성어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南柯一夢(남가일몽)과 같이 꿈 이야기만 해도 羅浮之夢(나부지몽), 盧生之夢(노생지몽), 役夫之夢(역부지몽), 一場春夢(일장춘몽), 黃粱之夢(황량지몽)이 있다.

꿈 이야기 말고 대조적인 비유로 나타낸 성어도 제법 된다. 인생이 풀끝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허무하다는 속담 ‘풀끝의 이슬’과 똑 같은 것이 人生如朝露(인생여조로)이다. 바람에 깜박이는 등불과 같다는 人生如風燈(인생여풍등)도 같은 뜻이다. 여기에 눈이나 진흙 위(雪泥)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鴻爪)이란 멋진 표현도 인생의 자취가 눈이 녹으면 사라지는 무상을 나타냈다.

중국 北宋(북송)의 문호 蘇軾(소식, 1036~1101)의 시에서 나왔다. 東坡(동파)란 호로 더 잘 알려진 소식은 부친 蘇洵(소순)과 아우 蘇轍(소철)과 함께 三蘇(삼소)로 불렸다. 서정적인 것이 많은 唐詩(당시)에 비해 철학적인 요소가 짙은 시가 많다는 평을 듣는다.

소식이 동생 소철에게 보낸 시 ‘和子由澠池懷舊(화자유면지회구)’에 성어 구절이 들어 있다. 子由(자유)는 소철의 자, 澠池(면지)는 河南省(하남성)에 있는 지명이라 한다. 澠은 고을이름 면. 앞 부분만 보자. ‘인생은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과 같을까, 기러기가 눈 내린 진흙 벌을 밟아놓은 것 같으니, 우연히 진흙 위에 발자국은 남겼지만, 기러기는 동서 어디로 날았는지 어떻게 알랴.’ 기러기 발자국은 흔적도 없고, 그것을 남긴 기러기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참으로 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