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맘 김미애 의원의 ‘꼬마 비서’
◇ 싱글맘 김미애 의원의 ‘꼬마 비서’
“우리 딸은 나하고 껴안고 자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작년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저녁 자리에서 만났을 때였다. 알려졌듯 김 의원은 조카 둘에 입양 딸을 키우는 싱글맘. 지역구인 부산에 두고 주말에만 보는 초3 딸 걱정이 컸다. 국회의원도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정치인은 내 삶과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편견이 조금 사라졌다.
2년 차를 맞은 싱글맘 초선 의원은 장거리 육아에 적응했을까. 오래간만에 연락했더니 좌충우돌 육아기를 쏟아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꼬마 비서님, 감사해요~’라는 문자가 왔더란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안 그래도 딸을 자주 못 보는데 코로나 때문에 등교도 안 하고 있으니 영 맘이 안 좋아 국회에 데리고 와 원격 수업을 듣게 했단다. 엄마가 국회에 출석한 사이, 녀석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국회의원 김미애 꼬마 비서 ○○○’ 하고 자기 이름 넣은 명함을 그려 의원실로 찾아온 손님에게 뿌린 것이었다. 엄마 개인용 전화번호까지 턱 하니 박아! 국회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일’과 ‘돌봄’ 병행이 이뤄지는 의원실을 또 본 적이 있다. 얼마 전 인터뷰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종종 주말에 동생을 데리고 국회로 출근한다고 했다. 동생은 24시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 중증발달장애인이다. 18년간 장애인보호시설에 있었는데 시설의 열악함을 알게 된 장 의원이 몇 해 전 데려와 둘이서 산다. 주말엔 돌봐 줄 사람 구하기가 도저히 힘들어 의원실로 데리고 와 곁에 둔다고 했다.
아이와 등원한 싱글맘 의원, 장애인 동생과 휴일 근무하는 의원. 일과 가정이 완벽히 분리된 듯한 공간인 국회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돌봄을 해결하지 못해 일터로 가족을 데리고 온 경우라 정치인의 카메라 앞 보여주기식 쇼와도 다르다.
‘국회가 유치원이냐, 놀이터냐’는 시선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의원 배지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돌봄 사각지대가 우리 사회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의원도 이런데 생업에 쫓기는 이들이 겪는 돌봄 공백은 오죽할까 싶다.
국회의원이라는 화려한 계급장을 떼고 보면 둘은 입양아 둔 싱글맘, 장애인 가족이다. 소수자 목소리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속 정당의 정치 지향은 정반대지만, 정치를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당사자만이 느끼는 절박함, 진심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넘치는 우리 정치에서 결여된 부분 아닌가.
주변에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두 사람을 응원하는 이들이 꽤 있다. 불임으로 입양을 고민하다가 ‘정인이 사건’ 이후 용기가 안 난다는 40대 지인은 김 의원이 입양 발언을 할 때마다 유심히 본다고 했다. 친문 성향인 그는 국민의힘 의원 얘기에 귀 기울일 줄은 몰랐단다. 장애인 딸을 둔 보수 60대 지인은 장 의원 지지자가 됐다. “장애인 가족 마음은 안 겪어 보면 모른다. 나하고 상관없는 얘기하는 정치인보다 우리 딸 삶 바꿔주는 정치인이 낫다”고 했다.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는 결국 ‘내 얘기’라고 느끼게 하는 정치 아닐까.
갈수록 다양한 방식의 삶이 생겨나고 새로운 사회 문제가 곳곳에 생겨나는데, 정치만 보수·진보라는 커다란 두 덫에 걸려 벗어나질 못한다. 두 정치인은 말한다. 좌우 낡은 두 틀로는 자신들의 정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며칠 전 장 의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떠오르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기준은 다양성·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희망을 줬느냐였다. 큰 그림 짜는 정치만큼이나 일상의 세세한 틈을 보듬는 정치가 중요한 세상이 왔다는 신호다. 삶에서 우러난 정책을 말하며 진영을 흔드는 ‘생활 밀착형’ 정치인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