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할지구화(割地求和) -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하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다.
벨 할(刂/10) 따 지(土/3) 구할 구(氺/2) 화할 화(口/5)
팽팽한 두 세력이 대립했을 때 대화를 통하여 협상하거나 힘이 밀릴 때는 양보한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또는 더 잃지 않기 위해 다툼을 벌이게 된다. 오늘날 국제관계서도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펼치는데 옛날 제후국끼리 으르렁거렸던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 140여 개나 됐다고 하는 제후국이 이합집산으로 20여국으로 줄고, 그 중 힘을 떨쳤던 7개국이 秦楚燕齊韓魏趙(진초연제한위조)의 七雄(칠웅)이다. 이들끼리도 국력은 차이가 나 전투는 끊이지 않았고, 약소국은 땅을 떼어주고(割地) 평화를 구한(求和) 치욕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史記(사기)’에 처음 나오는 이 말은 趙(조)나라와 秦(진)나라의 다툼에서였다. 平原君(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신하를 자처하는 割地稱臣(할지칭신)도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것은 같다.
조나라는 春秋時代(춘추시대) 강력한 晉(진)나라에서 삼분됐을 때 남이 넘보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떨쳤다. 하지만 惠文王(혜문왕) 이후 진나라가 수시로 침공하여 힘이 약해졌고 급기야 수도 邯鄲(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까지 포위되자 6개현을 떼어주고 화친을 맺으려 했다.
진의 군대가 물러난 후 유세객 虞卿(우경)의 떼어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왕이 질질 끌자 진에서 사신 樓緩(누원)을 보내 독촉했다. 두 나라가 전쟁을 하면 이웃이 기뻐할 텐데 ‘빨리 땅을 떼어주고 화친하여 진나라를 달래는 것이 낫습니다(故不如亟割地爲和 以疑天下而慰秦之心/ 고불여극할지위화 이의천하이위진지심)’고 했다. 이후 작은 魏(위)나라와 합종하여 버티다 멸망하고 말았다.
춘추시대부터 그린 馮夢龍(풍몽룡, 1574~1646)의 ‘東周列國志(동주열국지)‘에는 晉(진) 惠公(혜공)이 큰소리친다. ’우리는 당당한 천승지국인데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청하고서야(以堂堂千乘之國 而割地求和/ 이당당천승지국 이할지구화) 어찌 임금노릇을 하겠는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움을 준 秦(진) 穆公(목공)에 배은망덕한 혜공은 그러나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다. 淸(청)나라와 영국이 1840년 아편 밀수를 두고 벌인 阿片戰爭(아편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하고 난징南京/ 남경조약으로 홍콩을 할양한 것도 근대의 치욕이었다.
이권을 두고 다투는 조직이나 개인이나 모든 경우에 대비하여 지략을 짠다. 국가와 국가 사이라면 더욱 땅을 떼어주고 평화를 구걸하는 곤욕을 치르기 전에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나라 간의 무역도 전쟁이니 주고받는데 손해가 가지 않도록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상대가 무리하게 도발을 하는데도 자꾸 뒤로 물러서 양보를 하면 점점 얕보고 더 이상의 요구를 한다. 그러다간 어느새 쪽박을 차게 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