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6일 화요일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도은무명(道隱無名) - 도는 숨겨져 있어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길 도(辶/9) 숨을 은(阝/14) 없을 무(灬/8) 이름 명(口/3)

道(도)가 사람이 걷는 길만이 아니고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은 다 안다. 도를 닦는다, 도를 깨친다, 도가 트인다는 말도 많이 하는데 깨달음이나 기예의 경지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정도면 어느 수준 안다고 해도 깊이 있는 연구나 종교에서 말하는 도는 일반 사람의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불교선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는 여덟 가지의 길 八正道(팔정도)를 말하고,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朝聞夕死(조문석사)라 했던 孔子(공자)는 하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도라 했다. 더욱 老子(노자)는 도를 도라고 하지 않으면 이미 영원한 도가 아니라고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라 하니 알쏭달쏭하다.

노자는 여기에 더해 도는 숨겨져 있어(道隱) 이름이 없다(無名)고까지 했다. 고대 중국 周(주)나라의 관문을 지나면서 그곳을 지키던 尹喜(윤희)에게 남겼다는 ‘道德經(도덕경)’에서다. 無爲(무위)의 處世訓(처세훈)이 전체 81장의 대부분인 이 책 41장 同異章(동이장)에서 도는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도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현묘한 존재이기에 뛰어난 사람이라야 그것을 알고 부지런히 실천에 옮긴다고 했다.

그 부분의 표현은 ‘뛰어난 인사는 도를 들으면 힘써 실천한다(上士聞道 勤而行之/ 상사문도 근이행지)’이다. ‘어중간한 사람은 반신반의하고(中士聞道 若存若亡/ 중사문도 약존약망), 정도 낮은 사람은 크게 비웃는다(下士聞道 大笑之/ 하사문도 대소지)’로 이어진다.

그 뒤에 예로부터 전하는 말이라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게 심오한 말이 펼쳐진다. 몇 가지만 옮겨본다. ‘밝은 도는 컴컴한 것 같고, 도에 나아가는 것은 물러나는 것 같으며(明道若昧 進道若退/ 명도약매 진도약퇴).. 무한대의 모난 모양은 모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이루어지는 것이 늦으며(大方無隅 大器晚成/ 대방무우 대기만성), 큰 소리는 귀로 들을 수 없고, 큰 모습은 형체가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 대음희성 대상무형).’ 그러므로 절대존재인 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결론 낸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어도 오직 만물에 힘을 빌려주고 잘 생성되도록 할 뿐이다(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도은무명 부유도 선대차성).’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大器晩成(대기만성)도 여기서는 큰 그릇에 가득 채워지기까지는 아득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단다. 뛰어나게 훌륭한 작품은 보통 사람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큰 도는 이름이 없으면서도 모든 것을 받아들여 부족한 사람이 평소에 느끼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뛰어난 완성미를 보지 못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불평을 늘어놓는 보통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도 말고, 본래의 걷는 길,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것도 어려우니 탈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