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요일

‘초요갱’을 아십니까?

■ ‘초요갱’을 아십니까?

■ ‘초요갱’을 아십니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 최고의 기생은 황진이로. 그녀는 조선 기생의 대명사가 되어 었다. 하지만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황진이’란 이름이 없다.

그런데 실록에 무려 16번이나 이름이 나오는 기생이 있다. 그녀는 초나라 미인처럼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다하여 이름이 ‘초요갱’이다. 초요갱은 수없는 남자들을 상대했는데, 그 남자들 중 왕자가 세 명 있었다. 그 세 명 모두가 세종의 아들들이었다.

초요갱의 첫 번째 왕자는 세종대왕의 정실왕비인 소헌왕후의 일곱 번째 왕자인 평원대군 이임이었다. 평원대군 이임은 세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초요갱을 궁으로 데리고 와 첩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종시절 유명한 음악가 박연에게 부탁하여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임은 열아홉이란 짧은 인생을 살고 요절하고 말았다.

이임을 만나면서 배웠던 춤과 노래 덕분에 궐 안 행사에 드나들던 초요갱에게 두 번째 왕자가 다가오게 된다. 그는 평원대군보다 한 살 위였던 화의군 이영이었다. 화의군은 평원대군처럼 정실소생이 아닌 서자였다. 화의군과 같이 살던 초요갱이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보고 화의군이 그 남자를 때려 죽인 일이 있었다. 그 때는 수양대군이 왕위를 이어받은 세조 초기였는데, 화의군은 귀양을 가고 초요갱은 죽을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화의군의 동복동생인 계양군 이증이 초요갱은 세종 시대에 박연이 만들어 논 악무(樂舞)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다. 바로 이 계양군이 초요갱의 세 번째 왕자가 된다. 하지만 계양군도 요절하고 만다.

이것은 초요갱의 용모와 매력이 정말 출중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초요갱은 뛰어난 미모와 매력으로 무려 세종의 세 아들을 홀려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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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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