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3일 토요일

창운주필唱韻走筆 - 운자를 부르는 대로 빠르게 시를 짓다. 

창운주필唱韻走筆 - 운자를 부르는 대로 빠르게 시를 짓다. 

창운주필(唱韻走筆) - 운자를 부르는 대로 빠르게 시를 짓다.\xa0

부를 창(口/8) 운 운(音/10) 달릴 주(走/0) 붓 필(竹/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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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체가 날아가는 듯하다고 하면 빨리 쓰면서도 잘 쓴 글씨를 말한다. 단순히 速筆(속필)이라면 잘 쓰기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붓이 달리는 듯하다는 走筆(주필)은 글씨를 흘려서 빨리 쓴다는 뜻도 있지만 시를 빨리 짓는다는 의미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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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서 동일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같거나 비슷한 음조의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 韻(운)이다. 운자를 부르게 하고(唱韻) 곧바로 시를 짓는다(走筆)는 이 말은 옛날 양반들의 시회에서 유희로 곧잘 행해졌다고 한다. 조선의 방랑시인 김삿갓金笠/ 김립, 1807~1863이 가진 것 없이 팔도를 유람하면서 이 실력으로 잘 대접 받았다니 타고난 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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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훨씬 앞서 고려 중기의 문신 李奎報(이규보, 1168~1241)를 두고선 주필을 말할 수 없다. 60년간 이어진 崔忠獻(최충헌) 등의 무신정권에 협조했다는 평도 있으나 다양한 방면에 명문을 많이 남긴 詩豪(시호)로도 이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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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려서부터 말과 걸음이 빠르고 시를 잘 짓는다하여 ‘三捷(삼첩)’이란 별명을 얻었고, 성장해서 문단에서는 唐(당)의 李白(이백) 만큼 시를 빨리 잘 쓴다고 ‘走筆 李唐白(주필 이당백)‘으로 불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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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술, 거문고를 즐겨 三酷好(삼혹호) 선생이라 자칭했던 이규보는 문신 陳澕(진화, 澕는 깊을 화)와 함께 ’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이란 기록까지 남게 됐다. 정언과 한림이란 벼슬 이름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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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찬사가 정작 본인에겐 못마땅해서 ‘論走筆事略言(논주필사략언)’이란 글에서 깎아내린다. ‘창운주필이란 것은 사람을 시켜서 운자를 부르게 하고는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시를 지어내는 것(夫唱韻走筆者 使人唱其韻而賦之 不容一瞥者也/ 夫唱韻走筆者 사인창기운이부지 부용일별자야)’인데 술자리에서 한 때의 즐거움으로 했던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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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중에 지어 알아보지 못하는 글자도 있고, 뜻도 통하지 않아 수준이 떨어진다며 시가의 죄인이라 자책한다. 점차 구경거리로 되어 가소롭기까지 한데 높은 사람들이 이런 재주를 찬미하자 후진 중에서도 잇따라 나왔다며 자신은 취중에 지은 작품을 많이 없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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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자신의 재주를 낮췄지만 그의 명문은 많이 남았다. 이 난에 소개했던 성어 蝨犬畏敬(슬견외경)은 해충 이나 개의 목숨도 다 같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햇곡식을 수확하는 농부를 찬미하는 시는 더욱 좋다. ‘한알 한알을 어찌 가볍게 여기겠나,

사람의 생사와 빈부가 달렸다네(一粒一粒安可輕 係人生死與富貧/ 일립일립안가경 계인생사여부빈)’하며 농부를 부처처럼 생각한다는 新穀行(신곡행)이다.\xa0상대방의 말에 즉각 멋지게 잘 대응하는 사람은 부럽다. 이런 능력도 정치판에서 주고받는 막말 공박이 되면 피곤하기만 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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