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7일 수요일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서중사치(書中四痴) - 책과 관련된 네 바보,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거나 찾거나 돌려주는 바보

글 서(曰/6) 가운데 중(丨/3) 넉 사(囗/2) 어리석을 치(疒/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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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 이전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책이 귀했던 옛날에 이렇게 믿었다니 이해되지 않으나 책은 지식을 위한 것이고, 그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면 그만큼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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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중세 서양의 한 수도원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던 장서를 몰래 빼내 널리 퍼뜨린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iolini, 1380∼1459)란 필경사는 인문학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단다. 책과 관련한 이야기 중에(書中) 네 가지 바보(四痴)가 있다는 말이 전하는데 책 소유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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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네 바보부터 보자. ‘책을 빌리는 놈 바보, 빌려주는 사람도 바보(借一痴 借二痴/ 차일치 차이치), 자기 책 찾는 사람 바보, 돌려주는 놈 바보(索三痴 還四痴/ 색삼치 환사치)’, 모두 바보 천지다. 빌 借(차)는 ‘빌려주다’의 뜻도 있다. 중국 唐(당)나라 후기 昭宗(소종) 때 宗正少卿(종정소경)을 지낸 李匡文(이광문)의 ‘資暇集(자가집)’에 시속의 얘기라며 처음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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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앞서 학자 段成式(단성식)은 ‘책을 빌려주는 것도, 돌려주는 것도 똑같은 바보(借書還書 等爲二癡/ 차서환서 등위이치)’라고 ‘酉陽雜俎(유양잡조)’에서 말했다. 北宋(북송)의 呂希哲(여희철)도 같은 뜻의 ‘빌려주고 돌려주는 둘 다 바보(借書而與之 借人書而歸之 二者皆痴也/ 차서이여지 차인서이귀지 이자개치야)’라며 ‘呂氏雜記(여씨잡기)’에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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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바보 소리 들으며 책을 빌리는 사람도, 빌려주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독서에 나쁜 영향이 왔겠다. 그런데 실제 이 네 바보 이야기는 정반대로 오해에서 온 표현이라니 이 말을 더 믿어야 하겠다. 南宋(남송) 때의 문인 嚴有翼(엄유익)이 ‘藝苑雌黃(예원자황)’이란 글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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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책을 빌리러 갈 때 술 한 병, 책을 돌려줄 때 술 한 병을 들고 갔다(借書一瓻 還書一瓻/ 차서일치 환서일치).’ 瓻는 술단지 치, 목이 짧고 배가 부른 작은 항아리를 가리켰다. 책이 귀했던 시절에 고맙게도 책을 빌려 보고 돌려주지 않는 것을 도둑의 심보라며 술 한 병이라도 사례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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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단지를 뜻하는 어려운 글자 瓻(치)가 누군가의 장난으로 음이 같은 어리석을 痴(치)로 바꾼 것이 더 재미가 있어 후세로 내려온 셈이다. 자가 濟翁(제옹)인 이광문의 글에서는 책이 있어도 빌려주거나 돌려받는 것이 모두 어리석다며 有書借索(유서차색)이라고도 하는데 엄유익이 말한 술 한 병의 借書一瓻(차서일치)란 성어가 물론 더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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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는 書勿借人(서물차인)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책을 빌리거나 빌려 주거나 책을 옆에 두고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이 먼저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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