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적지수墨翟之守 - 묵적의 지킴, 옛날 생각이나 습관을 굳게 지킴
묵적지수(墨翟之守) - 묵적의 지킴, 옛날 생각이나 습관을 굳게 지킴
먹 묵(土/12) 꿩 적(羽/8) 갈 지(丿/3) 지킬 수(宀/3)
다른 사람과 한 약속은 잘 지켜야 믿음을 얻는다. 하지만 약속은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란 옹고집도 있고 ‘고리 백정 낼 모레’라는 속담처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욕하기도 한다.
老子(노자)가 숭낙을 쉽게 하면 믿음성이 적다고 한 輕諾寡信(경낙과신)이다. 그렇다고 한 번 약속이라며 주위상황이 바뀐 것도 무시하고 우직하게 지키려 하는 것도 어리석다. 부친의 도둑질을 증언했던 直躬(직궁)이나 여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다 물에 빠져 죽은 尾生(미생)의 행위는 본받을 일이 되지 못한다.
墨子(묵자)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로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이롭게 하여야 한다는 兼愛說(겸애설)을 주장했다. 본명이 墨翟(묵적)인 그가 楚(초)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 宋(송)을 지켜냈다(之守)는 이 말은 옛날 습관이나 자기의 생각을 굳게 지킨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의미가 점차 넓어져 나라를 잘 지키는 훌륭한 수비를 일컫기도 하고, 낡은 관습과 태도를 끝내 견지하는 옹고집, 보수적인 태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옛 방식을 고집하는 膠柱鼓瑟(교주고슬)이나 守株待兎(수주대토), 抱柱之信(포주지신)과 통하는 셈이다. ‘묵자’ 公輸盤(공수반)편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魯班(노반)이라고도 불리는 공수반은 온갖 기계를 잘 만드는 명장이었다. 그가 초나라에 와서 송나라를 치기 위한 전차와 성을 넘나드는 구름사다리 雲梯(운제)를 만들었다. 묵자가 이 소식을 듣고 대국이 조그만 나라를 치지 말라고 초나라 왕과 공수반을 설득했다. 그러면서 공수반의 공격을 막아 보겠다고 했다.
초왕 앞에서 모형 공방전이 벌어졌다. ‘공수반은 모든 구름사다리와 기구를 총동원했지만 묵자는 모두 막아내고도 여유가 있었다(公輸盤之攻械盡 子墨子之守圉有餘/ 공수반지공계진 자묵자지수어유여).’ 圉는 마부, 옥이란 뜻 외에 막는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묵자는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는 초왕의 약속을 받아냈다.
墨守(묵수)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하는 이 성어는 온갖 방책을 써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도, 융통성 없이 약속을 지키려 한다는 뜻도 국방을 위해서는 모두 합당한 말이다. 온갖 미사여구와 속임수가 판치는 국가 간의 약속은 무력이 강한 나라에 의해 언제나 깨질 수가 있으므로 항상 대비하면서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 남북의 협약을 지키지 않는 북한이나 강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