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목요일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관해난수(觀海難水) -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볼 관(見/18) 바다 해(氵/7) 어려울 난(隹/11) 물 수(水/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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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스스로 찾기에 최고의 선이라며 上善若水(상선약수)라 했다. 물은 아래로만 흘러 나중에는 바다로 모인다. 百川歸海(백천귀해)라 하여 개천이나 강이나 모든 물이 바다로 돌아가고, 바다 또한 모두 받아들여 이루어졌다고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란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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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海(북해)의 신이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본 적이 없는 강의 신에게 깨우치는 말이 井中之蛙(정중지와)다.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는 莊子(장자)의 우화다. 바다와 물을 말한 더 심오한 성어가 있다. 바다를 본 사람(觀海)은 물을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難水)는 ‘孟子(맹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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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물로 가득한 바다를 보고서 물을 말하기 어렵다고 하니 어떤 연유일까. 우물 안에서 좁게 보는 세상이 아니고 너무나 방대한 세상을 겪지 못한 사람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는 의미로 본다. 盡心 上(진심 상) 편에 孔子(공자)의 이야기부터 나온다. 부분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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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서는 노나라가 작다고 여겼고(登東山而小魯/ 등동산이소로), 태산에 올라가서는 천하가 작다는 것을 느꼈다(登太山而小天下/ 등태산이소천하).’ 太山(태산)은 泰山(태산)과 같다. 아는 것이 많아져 진리를 깨우치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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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이어진다.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렵고(觀於海者難爲水/ 관어해자난위수), 성인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은 어지간한 말로는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어렵다(遊於聖人之門者難爲言/ 유어성인지문자난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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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높은 경지에 다다른 성인인데 시냇물 같은 수준 낮은 사람이나 초학자에게 넓은 세상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게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높은 태산에 오르고 드넓은 바다를 본 사람은 사소한 것이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고, 하늘이 좁다고 여기는 개구리들만이 다 안다는 듯이 시시콜콜 가르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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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경지의 수준 높은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니 일반인들인 초심자들은 답답하다.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좋으련만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우물물을 길어 올릴 수가 없다. 뜻이 있는 보통사람은 갈고 닦아 근처라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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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최고의 전문가들은 함부로 단정 지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조금 아는 사람이 쉽게 나선다. 무식한 사람은 알 필요 없다는 투의 경박한 태도로는 조금 아는 지식도 의심 받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은 여기서도 겸손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