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5일 금요일

◇ 빈과일보 폐관...홍콩의 ‘분서갱유’

◇ 빈과일보 폐관...홍콩의 ‘분서갱유’

◇ 빈과일보 폐관...홍콩의 ‘분서갱유’

권력을 비판해온 신문사 편집국에 경찰 수백명이 들이닥친다.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기자들이 줄줄이 잡혀가 감옥에 갇히고, 자금이 억류되고, 독자들의 성원에도 결국 신문은 폐간된다…. 독재 시대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일이, 2021년 6월24일 홍콩에서 벌어졌다. 중국 당국에 비판적이었던 일간지 <핑궈(빈과)일보>(애플데일리)가 탄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날 마지막 호를 발행하자, 시민들이 이 신문을 사려고 빗속에서 긴 줄을 선 모습은 국가보안법 1년을 맞은 홍콩의 현실을 상징한다.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해 사업가로 성공한 지미 라이가 1989년 창간한 <핑궈일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초창기에는 판매 부수를 올리려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십 보도, 유명인 사생활 파헤치기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엔 중국공산당 지도부와 홍콩 정부의 문제를 파헤친 탐사보도와 홍콩 범민주 진영의 목소리를 적극 전하는 논조로 주목받았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에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광고 탄압 등을 우려해 다른 신문들이 비판적 논조를 누그러뜨리는 동안 홀로 꿋꿋이 버티는 <핑궈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높아졌다.

보안법이 발효된 다음날인 2020년 7월1일 아침 홍콩 주요 신문 1면에는 이를 축하하는 정부 광고가 실렸지만, <핑궈일보>만 보안법 비판 기사를 실었다. 다음달 홍콩 경찰은 <핑궈일보>를 압수수색하고, 지미 라이를 체포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재산을 압류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또다시 편집국이 수색을 당하고 신문사 재산이 압류되고, 편집국장과 주필 등이 체포되자, 신문사는 결국 폐간을 선택했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도 사라졌고, 26년 동안 쌓아온 언론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졌다.

<핑궈일보>의 죽음은 언론의 다양성과 자유로 유명하던, 우리가 알던 홍콩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콩 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데, 어떤 기사가 이 혐의에 해당되는지는 당국이 결정한다. 기자들은 계속 자기검열을 하거나 비판적 기사 쓰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에는 공영방송 RTHK에서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한 피디가 취재 절차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제작진이 쫓겨나고 있다.

오는 7월1일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 중국공산당은 왜 지금 <핑궈일보>에 대한 ‘분서갱유’를 단행했을까. 홍콩 언론과 홍콩인들, 나아가 중국 대륙의 사람들에게 ‘공산당에 대한 도전이나 비판적인 목소리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며 절대 충성을 요구하는 경고다. 보안법을 통해 홍콩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대륙과 다른 일국양제의 공간이었던 홍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화민족 부흥’의 성과로 내세우는 측면도 있다. 시진핑 지도부는 중국이 서구 열강으로부터 받았던 치욕의 세월을 끝내고 중국공산당이 외세를 혼내주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려 한다. 진시황이 비판적 학자들을 죽이고 책을 불태운 분서갱유로 비판을 억누를 수는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핑궈일보가 폐간하던 날 홍콩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글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사과(핑궈일보의 핑궈는 사과)를 죽여버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이 씨앗이 우리 마음에 이미 뿌리를 내렸고 우리가 사과 나무들을 키워낼 것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