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월요일

천진난만天眞爛漫 - 아무런 꾸밈이 없어 참됨이 넘치다.

천진난만天眞爛漫 - 아무런 꾸밈이 없어 참됨이 넘치다.

천진난만(天眞爛漫) - 아무런 꾸밈이 없어 참됨이 넘치다.

하늘 천(大/1) 참 진(目/5) 빛날 란(火/17) 흩어질 만(氵/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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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거짓이 없고 참 그대로(天眞)인 것으로 모두 믿는다.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하늘에 대고 맹세한다고 하니 그렇다. 참 진실이 꽃이 활짝 피듯이 화려하면(爛漫) 더 이상 거짓이 발 디딜 틈이 없다. 천진함이 넘치고 조금도 꾸밈이 없는 모습은 어린이에게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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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定煥(방정환)은 ‘어린이는 본 것, 느낀 것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예찬한다. 남을 속이고 하나라도 더 욕심을 내어 챙기려는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천진한 어린이를 보는 것만이라도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이처럼 듣기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이 성어에 달리 유래가 되는 이야기가 따르지 않아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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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가 없더라도 이 말을 사용하여 명문으로 남은 글은 몇 군데서 찾을 수 있다. 중국 唐(당)나라에서 詩聖(시성)으로 불렸던 杜甫(두보)는 재주에 비해 불운한 생을 보내는 詩仙(시선) 李白(이백)을 위로하는 시를 썼다. 형제 중 열두 째란 뜻의 ‘寄李十二白’(기이십이백)’이란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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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이야기 나누며 초야의 삶을 그리워했고(劇談憐野逸/ 극담련야일), 술을 좋아하여 천성의 참됨을 볼 수 있었네(嗜酒見天眞/ 기주견천진).’ 우리나라 현대 소설가 이태준은 그의 ‘文章(문장)’이란 글에서 北宋(북송)의 문인 蘇軾(소식)이 ‘천진난만함은 나의 스승(天眞爛漫是吾師/ 천진난만시오사)’이라 말했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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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전에는 천진한 도둑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正祖(정조) 때의 문신 成大中(성대중)이 지은 ‘靑城雜記(청성잡기)’에서다. 한 도둑이 부잣집에 들어갔다가 술이 잘 익은 항아리를 보고는 재물은 뒷전이고 마셔댔다. 취한 도둑이 항아리를 옮기려 했으나 무거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옮겨줄 사람을 소리쳐 부르다 들켜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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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나오게 하려고 사람들이 막대기를 휘둘렀다. 도둑이 외쳤다. ‘너희들, 작대기를 함부로 휘젓지 마라. 내 눈 다칠까 무섭다(若杖無輕 恐傷吾眼/ 야장무경 공상오안).’ 이런 도둑을 보고 평한다. ‘시와 예를 배우고서 남을 해치는 자에 비하면 도리어 천진난만하다(較諸詩禮發冢者 天眞爛漫/ 교제시례발총자 천진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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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시)의 이백이 천진하고, 書(서)의 소식이 스승으로 여겼던 난만도 세사에 물들기 전의 꾸밈없는 어린이에게서 찾은 것이 아닐까. 키덜트(Kidult)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지 제법 오래다. 어린이를 말하는 키드(Kid)와 어른 어덜트(Adult)의 합성어다. 유년시절에 갖고 놀던 장난감이나 만화,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다시 찾고 사 모으는 성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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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세상에서 살기 힘들어진 요즘의 젊은 어른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릴 적의 감정으로 되돌아가려는 현상이란다.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 순수함을 지닐 수 있는 세상을 열어간다면 바람직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