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 간병 살인과 복지정책
◇ 청년 간병 살인과 복지정책
몇 해 전 스물일곱 살 청년이 아버지를 목졸라 살해해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극악한 패륜 범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안타까운 정황이 드러났다. 아버지가 불치병을 오래 앓았고 집안은 가난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지만 청년은 며칠 뒤 “너무 괴로워서 살 수가 없다”며 집을 나갔다. 가족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근처 저수지에서 서성이던 청년을 찾아내 또 다른 비극을 막았다.
오랜 간병에 지쳐 부모나 형제 목숨을 빼앗는 것을 ‘간병 살해’라 한다. 노령 인구가 많은 일본에선 해마다 40~50건씩 발생한다. 안타까운 비극이다. 인면수심의 흉악범이긴커녕 지극한 효자나 효부, 금슬 좋은 부부 사이인데 오랜 간병에 지쳐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환자가 제발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저수지에 뛰어들려 했던 청년처럼 상당수가 범행 후 따라 죽는 ‘간병 자살’을 기도한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어 죽게 한 혐의로 재판받은 22세 대학 휴학생 사연이 엊그제 보도됐다. 이 사건도 처음엔 병든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패륜 범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청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가출했고, 아버지가 병마에 쓰러지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극 정성으로 돌봤으며, 병원비 내고 나면 난방은 고사하고 쌀 살 돈도 없어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아들을 놓아주겠다면서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자식 가진 어느 부모 심정이 다르겠는가. 청년은 울면서 아버지가 누워 있는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간병 살해 사건 재판정은 대개 눈물바다다. 안타까운 사연에 범인·방청객·판사가 함께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서인지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사례도 많다. 그러나 동정심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간병 살해는 사회·구조적 비극이다. 범행을 저지른 이 상당수가 병간호에 매달리느라 변변한 수입이 없고, 공공간병 지원을 못 받아 정신이 피폐해진다. 개인 범죄로 치부할 게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민기본생활 보장’을 내걸고 출범한 이 정부도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지 못한다. 22세 청년 사례가 알려지자 총리가 “국가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했을 뿐이다. 청년세대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다짐하는 차기 대선 후보들은 다를까.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은 용돈 수준에 불과한 돈을 온 국민에게 뿌리면서 복지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극단적 절망에 빠진 청년들부터 구하는 일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조선일보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