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8일 월요일

아내무형我乃無兄 - 나에게는 형이 없다, 남의 비방에 대응하지 않다.

아내무형我乃無兄 - 나에게는 형이 없다, 남의 비방에 대응하지 않다.

아내무형(我乃無兄) - 나에게는 형이 없다, 남의 비방에 대응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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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戈/3) 이에 내(丿/1) 없을 무(灬/8) 형 형(儿/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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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분명한 잘못에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도둑질을 하다 들켜도 변명을 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변명을 할수록 그 과실이 커 보이는데도 그렇다. 반대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남이 덮어씌워 누명을 썼을 때는 어떤 대처가 현명할까. 똑 같이 험담으로, 보복으로 갚는 것보다 더러워서 피한다고 상대를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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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태양처럼 마지막까지 빛나고, 하나의 참이 아흔아홉 가지의 거짓을 이기게 되어 있다는 철인의 가르침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누명에 대해 가장 강력한 대응을 한 사람은 ‘나에게는 형이 없다(我乃無兄)’고 한 直不疑(직불의)가 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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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사기)’의 萬石張叔(만석장숙) 열전에 나오는 직불의는 너무나 꼿꼿한 처신으로 중국 前漢(전한)의 5대 文帝(문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하위직으로 있을 때 동료가 휴가 때 황금을 잘못 챙겨 갔는데 직불의 짓이라 의심하자 변명 않고 변상했다. 돌아온 동료가 황금을 가져오자 의심한 주인이 사죄한 후로 직불의는 長者(장자)라며 명성이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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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교재 蒙求(몽구)에도 실린 不疑誣金(불의무금) 이야기다. 황제가 고관을 맡길 때 한 사람이 직불의는 인물이 좋아 형수와 정을 통한다고 헐뜯었다. 전해들은 직불의는 ‘나에게는 형이 없는데(我乃無兄/ 아내무형), 중얼거리며 끝내 결백을 밝히지 않았다(然終不自明也/ 연종부자명야).’ 이후 직불의는 더욱 신임을 받아 塞侯(새후)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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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불의는 거짓으로 헐뜯은 누명에 대해 변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은 세월이 지나면 자연히 밝혀진다는 것을 실천한 셈이다. 직불의보다 조금 후세인 後漢(후한) 光武帝(광무제) 때 第五倫(제오륜)이란 사람도 입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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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太守(태수)로 재직할 때 백성을 위한 세심한 정치로 신망을 받아 중앙으로 발탁될 때 역시 시기하는 사람들이 장인을 구타하는 패륜아라 했다. 변명 않고 있다가 황제 앞에서 입을 뗐다. ‘신은 세 번 결혼했는데 모두 장인이 없었습니다(臣三娶妻 皆無父/ 신삼취처 개무부).’ ‘後漢書(후한서)’ 등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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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실을 침소봉대하여 퍼뜨리는데 역사에 남은 이런 사람들만큼 느긋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일일이 대응하고 명예훼손으로 법에 호소하기도 한다. 당연히 날조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문제는 있는 사실도 절대 없었다고 잡아떼는 일이 흔하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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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소송이 갈수록 늘어나고, 고위 공직자들이 거쳐야 하는 청문회 때에는 부인으로 일관해 지켜보는 국민들의 속을 뒤집는 일이 허다하다. 또 있다. 같은 편의 비위는 별것 아니라며 덮고 상대편의 잘못은 미주알고주알 후빈다. 이런 사람은 진실의 힘을 모른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