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수요일

◇ 해상케이블카 타고 본 목포

◇ 해상케이블카 타고 본 목포

◇ 해상케이블카 타고 본 목포

아기자기한 여행을 상상했다. 목포는 뜻밖에 작은 도시다. 전체 면적이 51.64㎢로, 서울 서초구(약 47㎢) 정도 크기다. 목포에 가면 유달산, 삼학도, 근대 건축물, 박물관,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을 구석구석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거미줄 같은 목포 거리를 온종일 누빌 거란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대신 멀리서 천천히 오래도록 바라보는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9월 개통한 최첨단 케이블카(목포 해상케이블카)가 역설적으로 ‘느린 여행’을 이끌었다.

전국에서 가장 높고 긴 케이블카가 목포에 있다. 길이 3.23㎞, 높이(주탑) 155m다. 여수, 부산, 통영 케이블카보다 높고 길다. 북항에서 유달산을 거쳐 바다 건너 고하도로 간다. 몸은 편하고 마음은 가볍다. 눈은 쉴 틈이 없다. 목포 시가지, 삼학도, 목포항, 고하도, 다도해가 선명하다. 천천히 봐도 된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북항~고하도를 40분 동안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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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가 유달산(228.3m)에 다가갔다. ‘작은 금강산’, ‘영달산’(영혼이 거쳐 가는 산)이라고도 불리는 유달산은 바위가 돋보인다. 일등바위, 이등바위, 마당바위 등 이름 있는 바위만 20여개다. 예로부터 목포 시민들과 여행객들은 유달산 정상에서 다도해를 배경으로 해돋이와 해넘이, 야경을 즐겼다. 맨얼굴 드러낸 유달산 봉우리들을 지나자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에서도 목포 구도심을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요즘은 동쪽 하당, 남악 신도시와 구분해 서쪽 일대를 구도심이라 부르지만, 과거 일제강점기엔 구도심도 둘로 나눴다. 목포역 오거리가 분기점이다. 위쪽은 조선인 마을, 아래쪽은 일본인 거류지였다고 한다. 고도의 숨은그림찾기를 시작했다. 목포역은 어디 있을까. 색색이 빼곡한 지붕들 너머 파란 지붕이 연이어 붙은 곳이 보인다. 목포역이다. 옛 조선인 마을은 현 목원동 구역이다. 그곳에 ‘옥단이 길’이 있다. 옥단이는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옥단어!> 주인공 이름이다. 실존인물 옥단이가 물통을 이고 물장사를 하며 누빈 길을 ‘근대 역사 예술 거리’로 꾸몄다. 목포역을 출발해 노라노미술관, 목포청년회관, 벽화골목, 중앙식료시장 등을 지난다.

목포 근대역사 문화공간이라 널리 알려진 곳은 옛 일본인 거류지다. 현 유달동 구역이다. 노적봉 아래 옛 일본영사관(현 근대역사관 1관)은 상징적이다. 1900년에 지었다. 목포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근대역사관 2관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썼던 건물이다. 1921년 지었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농장 17곳을 관리하며 식민지 수탈 창구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근대역사관 건물 주변으로 일본식 가옥과 상가 주택들이 여럿 남아있다.

어느덧 편도 종착지인 고하도다. 높은 산(유달산) 아래 있는 섬이란 뜻이다. 목포 해안 건너 약 2㎞ 지점에 길게 누워 있다. 고하도엔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올 법한 주황색 5층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고하도 전망대다. 13척의 판옥선(조선 수군 전투선) 모형을 격자로 쌓아 올린 모양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1597년 명량대첩에서 13척 배로 일본 수군을 무찌른 뒤 106일간 고하도에 머물며 전열을 정비했다고 한다.

고하도 전망대 아래 바다 위를 걷는 길이 있다. ‘고하도 해안 데크’다. 총 거리는 1080m다. 섬 해안을 끼고 걷는다. 난대림 숲이 유난히 반짝인다. ‘갓바위’(목포 용해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500호)만큼이나 기괴한 형상의 해식애들도 보인다. 파도는 쉼 없이 출렁거리며 미래의 해식애를 만드는 중이다. 바다 건너편엔 목포항과 유달산, 목포 시가지가 길게 펼쳐진다. 해안 데크가 끝나는 곳이 ‘용머리’다. 그 위로 목포대교(북항~고하도)가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섬에는 숲길도 있다. 용머리에서 나무 계단을 오르면 바로 이어진다. 고하도 전망대까지 되돌아가는 약 1㎞ 숲길을 걸었다. ‘고하도 용오름 둘레숲길’(총 6㎞) 일부 구간이다. 해발 최대 80m가량, 능선 길이다. 완만한 오솔길 산책하듯 쉬엄쉬엄 걸었다. 섬 아래 해안 데크가 내려다보였다. 해안 데크를 걷는 이들은 모두 바다 건너 육지를 바라본다. 길가에 낯선 생명체가 자주 바스락거렸다. 우람한 집게발을 치켜든 붉은 게다. ‘도둑게’처럼 보였다. 도둑게는 해안 주변에 살며 여름엔 산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도둑게를 찾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다가 고하도 전망대로 내려왔다. 왕복 도보 시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케이블카는 바다 건너 온금동(현재 유달동으로 통합됨)을 지난다. ‘다순구미’라고 불리는 동네다. ‘따뜻한(다순) 후미(구미)진 동네’라는 뜻이다. 유달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한 온금동은 집들이 촘촘하다. 집들은 골목길에서 서로 현관문을 마주한다. 과거 진도와 신안 섬에서 목포로 유학 온 학생들이 자취하던 동네로도 알려져 있다. 온금동과 바로 옆 서산동(유달동으로 통합)은 예로부터 어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어촌을 상징하는 ‘조금 새끼’라는 말이 있다. 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조금엔 물고기가 잘 안 잡혀서 어민들은 보통 집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 생겨 태어난 아이들을 ‘조금 새끼’라 불렀다.

서산동은 영화 <1987> 촬영지 ‘연희네 슈퍼’로 널리 알려졌다. 연희네 슈퍼를 기점으로 서산동 ‘시화골목’이 시작된다. 크게 세 개의 골목길이 있다. 골목마다 서산동과 온금동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표현한 시와 그림이 빼곡하다. ‘긴 그림자를 끌고 애타게 달려온 골목과/순하게 기울어진 담장을 흔들어 깨우며/세상, 뭐 별것 있냐고/생의 쓴맛 뒤돌아보다 달더라도/곤한 비탈을 다독이며 내려앉는/저 맑은 볕처럼/다순구미는 따뜻하다’(‘다순구미는 따뜻하다’(조기호) 중) 요즘도 서산동 사람들은 골목 위 보리마당에 올라 볕을 즐긴다고 한다. 일등바위, 마당바위, 유선각, 대학루 등 유달산 자락 풍경이 길게 펼쳐지는 곳이다.

멀어지는 목포항을 바라봤다. 과거 제주도와 신안군 외딴 섬으로 가는 조선 유배객들이 뒤돌아보고,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낯설게 쳐다보고, 섬 유학생과 어민들이 설렘과 안도감에 벅차 바라봤을 곳. 유달산 넘어 돌아가는 길, 목포가 더 궁금하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목포는 충분히 작으니까.

목포 해상케이블카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운영한다.(3~10월 주말 기준) 일반 캐빈 2만2000원,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 2만7000원.(성인, 왕복 기준) 고하도 전망대는 내부 수리 중이다. 빨라야 오는 29일 이후 문 열 예정이다. 북항 승강장 주소는 해양대학로 240.(문의 061-244-2600)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