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조어 양산하는 부동산 벼락거지
◇ 신조어 양산하는 부동산 벼락거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닦은 역작이다. 베버는 카를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비판하고 정신적 관점에서 역사를 설명했다. 베버의 저작은 인간의 이윤추구에 종교적·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신의 섭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은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다. 정직하게 일하고 저축하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이 무너질 때 사회는 불안해진다. 세계 자본주의 맏형인 미국도 최근 불평등이 심해지고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 역시 실물경기는 안 좋은데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자산시장만 폭등세를 연출하고 있다. 일해서 수입을 얻기보다 ‘돈이 돈을 낳는’ 시대가 온 듯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가장 꺾어놓는 것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다. “그때 집을 사자는 내 말을 들었어야 했다”며 부부싸움이 잦아졌다는 것도 너무 흔한 말이 됐다. 최근 한 방송 오락프로그램에 나온 배우는 “몇 년 전 전세로 살 때 매매가 6억 원이었던 서대문구 아파트가 지금 13억 원으로 뛰었다”며 자신의 사정을 소상히 털어놔 화제가 됐다. 그때 집을 안 사고 월세로 가는 바람에 지금까지 저축도 못하고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벼락부자라는 말은 있었지만 이젠 벼락거지라는 말도 추가될 모양이다. 벼락부자는 알다시피 한순간에 부자가 된 사람을 말한다. 벼락거지는 이에 빗대 집값 폭등과 전세난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월세 난민으로 전락한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수입과 재산이 비슷했던 주변 사람들이 3, 4년 전 집을 샀느냐 안 샀느냐에 따라 자산 규모 차이가 수억 원씩 벌어졌으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에도 부동산 가격이 오른 적은 있지만 짧은 기간에 부동산 관련 신조어가 요즘처럼 많이 생겨난 때도 없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 패닉 바잉(공황 상태에서 구매), 양포세(양도세 포기한 세무사), 부동산 블루(부동산 우울증), 부동산 카스트(부동산 계급)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젊은 세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극심한 취업난으로 사회에 첫발도 내딛지 못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도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다. 청년들에게 성실하게 돈을 모아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