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0일 일요일

◇ 보쌈에 소맥 '화상 한식투어'...코로나에 살아남은 여행사 사람들

◇ 보쌈에 소맥 화상 한식투어...코로나에 살아남은 여행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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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쌈에 소맥 화상 한식투어...코로나에 살아남은 여행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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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가 해를 넘겼다. 근근히 버텼던 여행업계도 이젠 한계에 다다른 듯 보인다. 겨울에 들면서 배달업체로, 보험회사로 출근한다는 여행사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반면에 시련에 굴하지 않고 새 꿈을 벼리는 여행사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전공과 주특기를 살려 새로운 여행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들. 달라진 세상, 달라진 여행을 시작한 세 명의 코로나 극복기를 소개한다.

-일본 소면 문화를 여행하다

‘엔타비’는 일본 전문 여행사다. 서울·부산은 물론이고, 일본 오사카·후쿠오카·삿포로에도 지사를 뒀던 탄탄한 여행사다. 지난 1년 사이 31명(한국인 24명, 일본인 9명)이었던 직원이 4명으로 줄었다. 그래도 간판은 내리지 않았다. 김윤중(42) 대표가 지난 16년간 1년의 절반 가까이 일본에 머물면서 쌓았던 인맥과 콘텐트를 총동원해 새 활로를 찾아냈다. 일본 소면 문화다.

김 대표는 일본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에서 생산하는 전통 소면을 수입한다. 미나미시마바라는 소면의 고장이다. 인구 5만 명 도시에 소면 공장 300여 개가 있다. 이 마을에선 350년째 손으로 늘여 면을 뽑아 소면을 만든다. 김 대표가 이 소면과 인연을 맺은 건, 제주올레가 일본에 낸 올레길 ‘규슈올레’ 덕분이다. 2015년 미나미시마바라에 규슈올레 코스가 들어섰고, 그때부터 엔타비는 미나미시마바라 여행상품을 운용했다.

“작년 8월 본격적으로 소면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는 사람은 아는 명품이어서 입소문이 금방 났어요. 이치류, 옥동식, 효계, 부산 젠스시 등 쟁쟁한 맛집 예닐곱 곳이 우리 소면으로 메뉴를 개발했어요.”

소면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김 대표는 사업을 확장했다. 11월 아고다시(날치 조미료), 12월 아리타 도자기를 수입했다. 소면과 천연 조미료, 그리고 식기, 이로써 김 대표의 일본 전통 소면 밥상이 차려졌다. 8월 50만원이었던 매출이 12월 1500만원을 넘었다.

“지금은 이렇게라도 여행업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거니까요. 다시 여행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이미 50여 개 상품을 기획해 놨습니다.”

-화상회의에서 재현하는 한국의 맛

‘오미요리연구소’ 김민선 대표(36)는 요리사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방한 외국인 대상으로 푸드 투어와 요리 강습을 진행했다. 2019년에는 한 달에만 외국인 약 500명이 김 대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학원에서 ‘전통식생활문화’를 전공하고 각종 음식 자격증을 딴 경력을 바탕으로 2015년 음식관광 회사 오미요리연구소를 창업했다. 연구소는 한국관광공사와 서울관광재단으로부터 관광벤처기업으로 선정됐고, 2019년 한식진흥원 최우수 음식관광기업으로 꼽혔다.

김 대표도 코로나 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외국인 입국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연구소 손님도 뚝 끊겼다.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김 대표는 에어비앤비의 ‘온라인 체험’ 프로그램을 주목했다. 5월부터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요리 강습(사진 위)을 진행했다.

요리 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다. 전 세계에서 강습 프로그램에 들어왔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와 멕시코에서도 참여했다. 온라인 강습 주 3회 기준으로 한 달에 외국인 200~300명이 방문했다. 요리 강습을 가족 모임, 회사 워크숍으로 활용하는 참가자도 많았다. 메뉴는 비빔밥·잡채·보쌈부터 ‘소맥’까지 폭넓게 다룬다. 반응도 좋다. 김 대표의 프로그램 점수는 5점 만점에 4.97점. 에어비앤비의 여느 요리 강습에 뒤지지 않는다. 열 번 넘게 들어온 단골도 여럿 생겼다.

김 대표는 요리만 가르치지 않는다. 서울 동대문 약령시장, 인천 차이나타운 등지에서 촬영한 푸드 투어 영상도 보여준다. 김 대표는 “전 세계 참가자들이 ‘한국을 여행한 것 같다’ ‘나중에 반드시 한국을 찾겠다’고 말할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렇게라도 한국의 매력을 알려야 여행이 재개되면 한국의 관광산업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캠핑카 여행을 주도하다

코로나 사태가 이어진 2020년. 한국에서도 캠핑 열풍이 불었다. 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캠핑 문화, 특히 차박 문화는 독특하다. 굳이 비좁은 승용차에서 잠을 자고, 해수욕장이나 유원지 공짜 주차장을 찾아가 캠핑을 한다. 차박이 유난히 인기인 이유 중엔 지나치게 비싼 국내 캠핑카 가격도 있다. 캠핑카 대여 사업에 여행사 ‘비욘드코리아’가 뛰어든 이유다.

비욘드코리아는 중남미·미국·아프리카 전문 여행사다. 하나투어와 남미 항공사 ‘라탐’ ‘아비앙카’ 한국 총판을 거친 김봉수(51) 대표가 2009년 창업했다. 김 대표는 2016년 미국 캠핑카 회사 ‘크루즈 아메리카’ 한국 예약 업무를 맡으면서 캠핑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온 가족이 주방·침대·화장실을 갖춘 캠핑카를 빌려 느긋하게 여행하는 문화가 언젠가는 한국에도 정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 코로나 사태가 발발했고, 김 대표 예상대로 캠핑 문화가 확산했다. 2월 말 중남미 단체 여행팀을 끝으로 완전히 일이 끊기자 김 대표는 국내 캠핑카(사진 아래) 대여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스타렉스 캠핑카 두 대를 마련해 7월부터 인터넷에서 예약을 받았다. 캠핑 시즌인 7~11월 예약이 꽉 차는 걸 보며, 캠핑카 대여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해외여행이 재개돼도 캠핑카 사업은 계속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캠핑카 공유, 콘도 개념의 회원제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비욘드코리아 직원은 올해 10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여전히 캠핑카만으로는 수익이 부족하다. 온라인몰 ‘봉상회’를 만들어 터키 건강식품 같은 해외 특산물 판매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요즘에야 여행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반성하고 있다”며 “직원들과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