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치료제-뇌 손상 자체 늦추는 약은 처음
◇ 치매 치료제-뇌 손상 자체 늦추는 약은 처음
박완서 작가는 26년 동안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1남 4녀를 둔 작가는 “시어머니는 아들딸 가리지 않고 우리 집에 새로 태어난 생명을 기쁘고 극진하게 모신, 천사의 마음을 타고난 분”이라고 했다. 이 시어머니가 말년 3~4년 ‘노망이 드셔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작가는 “지금으로 치면 치매”라고 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살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결국 화해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 ‘해산바가지’다.
박완서 작가가 들었으면 크게 반길 뉴스가 나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미 제약사 바이오젠이 일본의 에자이와 함께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승인한 것이다.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것은 2003년 이래 18년 만이다. 기존 허가 받은 알츠하이머 약은 기억력 감소 등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뇌 손상 자체를 늦추는 약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치매다. 현재 국내 치매 환자 수는 84만명으로, 연평균 16% 증가하고 있다. 65세 이상에서는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다. 이처럼 환자는 늘어나는데 치매 치료제는 특히 개발이 어려운 난공불락 영역으로 꼽혀왔다. 인간의 뇌는 우주에 비견될 만큼 복잡하다. 우리가 뇌에 대해 아는 것도 부족하다. 바이오젠 신약은 뇌에서 ‘베타-아밀로이드’라는 해로운 단백질 덩어리 제거를 돕는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라이릴리는 지난 30년간 30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했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화이자도 2018년 개발을 포기하고 대규모 감원을 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임상 실패율은 99.6%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바이오젠도 천신만고 끝에 승인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19년 임상시험에서 개선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자료를 다시 분석한 결과, 고용량을 투여한 환자의 사고 능력 저하가 대조군보다 22% 덜했다며 FDA에 신약 승인을 신청했다. FDA의 외부 전문가 자문위는 작년 11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며 불허를 권고했지만 FDA가 후속 연구를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다.
바이오젠 외에도 카사바사이언스, 알렉터, 로슈 등 해외 제약사와 젬백스 등 국내 제약사들도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과학자들은 임상 시험 실패에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초기 임상에서 인지 기능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후보 물질도 있다. 실패에서 배우며 도전을 계속하면 치매라는 성도 함락하는 날이 올 것이다.
-조선일보 만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