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토요일

◇ 가짜뉴스 '뽀빠이 시금치'의 교훈

◇ 가짜뉴스 뽀빠이 시금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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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뉴스 뽀빠이 시금치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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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또래 독자들은 어린 시절 보고 자란 뽀빠이 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또 뽀빠이하면 시금치를 떠올리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뽀빠이가 위험에 처한 올리브를 구하기 위해 철분이 많이 든 시금치를 먹고 브루터스를 혼내주는 게 보통 이 만화의 클라이맥스였다.

하지만 시금치에 철분이 많다는 상식은 오래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녹색 채소에 철분이 있고 시금치에도 당연히 철분이 있지만, 시금치에 특히 철분 함량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럼 지금도 많은 사람이 믿고 있는 이 상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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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 잘 알려진 일설에 의하면 1930년대 독일 과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에서 소수점을 잘못 찍어 시금치의 철분 함량이 열 배로 과장되었는데, 이후 연구들이 이 잘못된 결과를 인용하면서 과학적 사실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즉 90년 전 사소한 실수 때문에 지금도 세계 많은 어린이가 시금치를 먹는 고역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다른 연구를 인용할 때 원래 연구를 꼼꼼히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강조하기 위한 예로 사용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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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한 연구는 이 소수점 실수 이야기 자체도 근거 없는 어번 레전드라는 걸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학자들은 보통 1981년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인용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1930년대 독일 논문을 직접 인용하고 있지도 않고 소수점 이야기의 근거가 어디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나중에 이 글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처음 어디에서 들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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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후 연구들이 이 1981년 연구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인용하면서 소수점 실수 일화는 과학계에서 사실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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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금치 일화는 우리가 굳게 믿는 사실이 얼마나 허약한 근거에 기반한 것일 수 있고, 또 근거 없는 이야기도 일단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면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아이작 토머스의 이름을 딴 토머스의 정리라는 게 있는데,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실재하는 것으로 정의하면 우리 삶에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 시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시금치에 철분이 많다는 사실 때문에 수많은 어린이가 시금치를 먹고 자랐고, 또 학생들은 소수점 실수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근거 없는 일화의 교훈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게 다 근거 없는 가짜뉴스로 판명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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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학계에는 피어 리뷰와 재검증을 통해 잘못된 연구 결과를 바로 잡는 시스템이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고, 또 보통 연구 결과들이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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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양한 뉴스 매체들과 SNS상의 정보는 특별한 여과 없이 고스란히 대중에게 전해지고 인용되면서 사회적 사실이 된다. 사람들이 입맛에 맞는 소식과 견해만 접하는 맞춤형 뉴스의 시대, 죽은 록스타도 재생해내는 딥페이크의 시대, 그리고 초강대국 대통령이 가짜뉴스 공장장이 되어버린 시대가 특별히 우려스러운 이유다. 지식과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별해서 받아들이는 능력, 그리고 뉴스 다이어트의 정치적, 이념적 다양화가 민주시민의 중요한 덕목인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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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