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8일 월요일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계구우후(鷄口牛後)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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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계(鳥/10) 입 구(口/0) 소 우(牛/0) 뒤 후(彳/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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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남의 밑에서 굽실거리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남의 집에서 하인 살이 하는 사람도 조금만 형편이 풀리면 언젠가는 독립을 꿈꾼다. 크고 훌륭한 자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차라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속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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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볏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 ‘쇠꼬리보다 닭대가리가 낫다’ 등이다. 언뜻 비교가 안 되지만 닭의 주둥이(鷄口)와 소의 항문을 말하는 뒤(牛後)를 붙인 이 성어도 마찬가지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뒤는 되지 말라(寧爲鷄口 無爲牛後/ 영위계구 무위우후)’는 말의 뒷부분만 잘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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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 기원전 8세기~3세기)에 활약한 諸子百家(제자백가) 중에서 縱橫家(종횡가)가 있다. 책략을 써서 국제 외교상 큰 활약을 하는 유세객을 가리키는데 ‘말 잘하기는 소진장의’란 말이 있듯이 蘇秦(소진)과 張儀(장의)가 대표한다. 스승 鬼谷子(귀곡자) 밑에서 같이 수학했지만 나가는 길은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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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세력이 커지는 秦(진)나라에 나머지 여섯 나라 楚燕齊韓魏趙(초연제한위조)가 힘을 합쳐 대항해야 한다는 合縱策(합종책)을 주장한 사람이 소진이었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왕들을 세 치 혀로 설득시켜 이 모든 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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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宣惠王(선혜왕)에 유세할 때 소진이 이 속담을 인용했다. 소국이라고 한나라가 진을 섬긴다면 야금야금 땅을 떼어주기를 요구해 나중에는 남아있지 못하게 되고, 이후에는 군사를 동원해 멸망시키고 말 것이라며 말한다. ‘속담에 닭부리가 되더라도 소꼬리는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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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일 서쪽을 향해 신하로 진을 섬긴다면 소꼬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鄙諺曰 寧爲鷄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비언왈 녕위계구 무위우후 금서면교비이신사진 하이어우후호).’ 선혜왕의 자존심을 긁어 합종에 합류하도록 했다. ‘史記(사기)’ 소진열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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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머리가 돼야 한다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차근차근 실력을 닦아 큰 자리에 들어서지 않고 처음부터 맹목적으로 큰판을 펼쳐선 될 일도 안 된다. 젊은이들의 취업이 아주 어렵다고 하면서 건실한 중소기업까지 외면하는 것은 작은 우두머리라도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