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공이곡同工異曲 - 같은 악공이라도 곡조를 달리 한다, 겉만 다를 뿐 내용이 같다.
동공이곡(同工異曲) - 같은 악공이라도 곡조를 달리 한다, 겉만 다를 뿐 내용이 같다.
한가지 동(口/3) 장인 공(工/0) 다를 이(田/6) 굽을 곡(曰/2)
唐宋八大家(당송팔대가)는 중국 唐(당)과 宋(송)나라 때의 뛰어난 문장가를 말하는데 당에서는 韓愈(한유, 768~824)와 柳宗元(유종원) 두 사람밖에 없다. 친구 사이인 둘은 고문운동을 제창하고 형식만을 추구하는 騈文(변문, 騈은 쌍말 변)을 반대하여 후학들에 기려졌다. 이 중 한유는 어려운 집안에서 독학하여 하급관리에 나섰지만 곧은 성품으로 벼슬자리에서 쫓기고 귀양을 가는 등 파란만장한 중에서도 명문을 남겼다. 그의 호를 딴 문집 昌黎先生集(창려선생집)에 실린 ‘進學解(진학해)’에 재주나 솜씨는 같아도(同工) 표현된 내용이나 맛은 다르다(異曲)는 이 성어가 나온다.
이 글에서 한유는 자기수양과 학문 탐구에 전념하는 것이 학자의 길이라 강조하고 그러면서도 재주와 덕이 뛰어난 인재가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여기엔 재미있는 성어도 많아 이 난에서 자주 등장했다. 쇠오줌과 말똥이라도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갖추는 것이 좋다는 牛溲馬勃(우수마발), 머리가 벗겨지고 이가 빠진 노인의 모습 頭童齒豁(두동치활), 남의 비밀이나 결점을 파헤치는 爬羅剔抉(파라척결, 爬는 긁을 파, 剔은 뼈바를 척, 抉은 도려낼 결) 등이다. 같은 악공이라도 곡조를 달리 한다는 이 말은 대화체의 글에서 제자들이 한유의 문장을 높이 평가하는데서 나왔다.
여기에서 한유의 글은 春秋(춘추)와 詩經(시경) 등의 근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본받았다고 하면서 이어진다. ‘이후의 장자와 이소,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양웅과 사마상여와는 정교한 기량은 같아도 그 정취는 다릅니다(下逮莊騷 太史所錄 子雲相如 同工異曲).’ 離騷(이소)는 屈原(굴원)의 작품, 태사는 司馬遷(사마천)의 역사기록을 맡은 벼슬, 子雲(자운)은 前漢(전한) 말의 문인 揚雄(양웅)의 자, 相如(상여)는 역시 전한의 司馬相如(사마상여)를 말한다. 이들 문장가들과 비견하면서 색다른 광채를 발하는 스승의 글을 높이면서도 나라의 부름도 못 받고 고생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라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한 곡을 연주자에 따라 지휘자에 따라 다른 정감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하다. 동등한 기량을 가진 사람이라도 정취가 다르다는 것은 처리하는 방법은 같아도 그 결과까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비유할 때 이 말을 썼다. 한유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孔孟(공맹)같은 성현도 불우했는데 미관말직이라도 과분하다고 겸손해 했다. 이렇게 다양한 결과로 조화를 이루면 좋겠는데 오늘날의 쓰임새는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똑 같을 때, 또는 겉만 다를 뿐 변한 것이 없을 때 사용한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게 꾸미고 완전히 다른 모습인 채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아야 한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