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궁구물박(窮寇勿迫) – 궁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
다할 궁(穴/10) 도적 구(宀/8) 말 물(勹/2) 핍박할 박(辶/5)
‘독 안에 든 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를 빗댄 말이다. 그런데 독 안으로 몰리기 전까지 순순히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막다른 지경에 이르면 약한 자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반항한다는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도 있으니 말이다. 성어 窮鼠齧猫(궁서설묘, 齧은 깨물 설)와 똑 같다. 비슷한 뜻의 말이 많다. 쫓기는 짐승은 강적에게도 덤비는 困獸猶鬪(곤수유투), 사로잡힌 새도 막다르면 수레를 엎어버린다는 禽困覆車(금곤복거), 새가 막다른 곳까지 쫓기면 상대방을 쫀다는 鳥窮則啄(조궁즉탁) 등이다. 어느 것이나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게 되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전쟁판에도 이 말은 통용된다. 적을 막다른 곳으로(窮寇) 몰아넣지 말라(勿迫)는 것으로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전략가 孫子(손자)가 타일렀다. 적을 사지로 몰아넣어 맹공을 퍼부으면 결사적으로 반격하여 도리어 아군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손자병법’에서 말한다. 적을 완전히 섬멸하고 완전한 승리를 눈앞에 두고서 퇴로를 열어둔다는 것은 소극적인 전법이라 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미래를 위해 인간적인 배려를 한 것이라 더 가치가 있다.
적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패배를 안겼기 때문이다. 서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유리한 기회나 장소를 확보하는 것을 다룬 軍爭(군쟁)편에 실려 있다. 전쟁 중에 지켜야 할 여덟 가지 금기사항을 나열하면서 제일 끝에 내세운다. 내용을 보자. ‘용병의 원칙은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적을 올려다보면서 공격하지 말고, 언덕을 등지고 있는 적과 싸우지 않는다(故用兵之法 高陵勿向 背丘勿逆/ 고용병지법 고릉물향 배구물역). 거짓으로 패한 척하는 적은 추격하지 말고, 적의 정예부대를 공격하지 않는다(佯北勿從 銳卒勿攻/ 양배물종 예졸물공). 미끼로 유인하는 부대는 공격하지 말고, 돌아가는 군대의 퇴로를 끊지 않는다(餌兵勿食 歸師勿遏/ 이병물식 귀사물알). 포위된 적군은 한 쪽을 트게 하고, 궁지에 몰린 적은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는다(圍師遺闕 窮寇勿迫/ 위사유궐 궁구물박).’
佯은 거짓 양, 遏은 막을 알.
힘이 있는 위치에 있을수록 아랫사람의 사정을 잘 이해하면 진정한 마음을 얻는다. 99를 가진 사람이 마지막 1을 가진 사람에게서 1을 빼앗는다면 이판사판으로 나와 99도 잘 지켜내지 못한다. / 제공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