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일본 규슈섬 남쪽 끝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작은 마을 미야마美山는 일본의 대표적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야키’의 발상지이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들의 절반이 이곳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 조선 도공들에 의해 처음 사쓰마에서 만들어 낸 백자가 ‘히바카리’였다. 일본어로 히(火)는 불이고, 바카리는 뿐이라는 뜻이다. 사쓰마에서 만들어 낸 백자 ‘히바카리’는 조선의 흙과 유약으로 조선 도공이 만들었고, 일본 것은 불만 빌렸다는 뜻이다. 지금도 매일 가마의 장작 타는 냄새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 마을 한가운데 갓 모양의 입구 장식과 한국식 정자가 유독 눈에 띄는 공방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사쓰마야키의 본가(本家)로 일컬어지는 심수관요다.
심수관가(沈壽官家)는 조선에서 사쓰마(薩摩)로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 심당길의 후예들이다. 400년 전 심당길이 처음 가마를 만든 같은 자리에서 그 후손들이 여전히 도자기를 빚어오고 있다. 400여 년간 심수관가가 빚어온 ‘사쓰마야키(薩摩燒)’는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수많은 도공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왜 그랬을까?
15~16세기 일본 상인 사이에 다도(茶道)가 유행하기 시작해, 유력 다이묘와 승려에게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질 좋은 찻그릇을 찾는 권력자들이 늘어났으나, 당시 일본의 도자기 제작 기술로는 도기(陶器)는 생산이 가능했지만 자기는 만들지 못했다. 자기는 1300도에 가까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 도기보다 더 단단하고, 손으로 쳤을 때 맑은 소리가 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런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흙도 가마도 없었다. 그래서 높은 온도를 견디며 만들어진 조선의 백색 자기가 명품으로 꼽혔다.
"임진왜란은 ‘야키모노센소(燒物戰爭) 즉, 도자기 전쟁이라고 칭할 만큼 수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온 심당길같은 조선 도공 덕분에 일본 도자기는 크게 발달했다. 이들은 백자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내고 조선식 도자기가마도 도입했다. 이렇게 도자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본은 세계 도자기 시장에도 진출하여, 17세기 이후 중국에 버금가는 도자기수출국이 되었다.
",이렇게 명성을 떨치게 된 일본의 대표 도자기 중 하나가 바로 심수관가의 사쓰마도자기이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이다.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11대까지는 각자의 이름을 쓰다가 이후부터 자손들이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렇게 선대의 이름을 계승습명:襲名하는 것은 선대의 문화적 업적이 엄청나고,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장남(長男)이 가업과 함께 그 이름도 습명(襲名)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얼마 전 14대 심수관이 향년 92세로 사망하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15대 심수관(일본명 오사코가즈테루)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