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일요일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 도자기 명가 심수관가(沈壽官家)

일본 규슈섬 남쪽 끝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작은 마을 미야마美山는 일본의 대표적 도자기로 꼽히는 ‘사쓰마야키’의 발상지이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끌려온 도공들의 절반이 이곳에 터를 잡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 조선 도공들에 의해 처음 사쓰마에서 만들어 낸 백자가 ‘히바카리’였다. 일본어로 히(火)는 불이고, 바카리는 뿐이라는 뜻이다. 사쓰마에서 만들어 낸 백자 ‘히바카리’는 조선의 흙과 유약으로 조선 도공이 만들었고, 일본 것은 불만 빌렸다는 뜻이다. 지금도 매일 가마의 장작 타는 냄새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 마을 한가운데 갓 모양의 입구 장식과 한국식 정자가 유독 눈에 띄는 공방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사쓰마야키의 본가(本家)로 일컬어지는 심수관요다.

심수관가(沈壽官家)는 조선에서 사쓰마(薩摩)로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 심당길의 후예들이다. 400년 전 심당길이 처음 가마를 만든 같은 자리에서 그 후손들이 여전히 도자기를 빚어오고 있다. 400여 년간 심수관가가 빚어온 ‘사쓰마야키(薩摩燒)’는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수많은 도공을 포로로 끌고 갔는데, 왜 그랬을까?

15~16세기 일본 상인 사이에 다도(茶道)가 유행하기 시작해, 유력 다이묘와 승려에게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질 좋은 찻그릇을 찾는 권력자들이 늘어났으나, 당시 일본의 도자기 제작 기술로는 도기(陶器)는 생산이 가능했지만 자기는 만들지 못했다. 자기는 1300도에 가까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 도기보다 더 단단하고, 손으로 쳤을 때 맑은 소리가 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런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흙도 가마도 없었다. 그래서 높은 온도를 견디며 만들어진 조선의 백색 자기가 명품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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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야키모노센소(燒物戰爭) 즉, 도자기 전쟁이라고 칭할 만큼 수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온 심당길같은 조선 도공 덕분에 일본 도자기는 크게 발달했다. 이들은 백자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내고 조선식 도자기가마도 도입했다. 이렇게 도자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본은 세계 도자기 시장에도 진출하여, 17세기 이후 중국에 버금가는 도자기수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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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명성을 떨치게 된 일본의 대표 도자기 중 하나가 바로 심수관가의 사쓰마도자기이다. 심수관이라는 이름은 습명(襲名·선대의 이름을 계승)이다.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의 업적을 기려, 11대까지는 각자의 이름을 쓰다가 이후부터 자손들이 그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렇게 선대의 이름을 계승습명:襲名하는 것은 선대의 문화적 업적이 엄청나고,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장남(長男)이 가업과 함께 그 이름도 습명(襲名)으로 가지게 된 것이다. 얼마 전 14대 심수관이 향년 92세로 사망하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15대 심수관(일본명 오사코가즈테루)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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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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