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
타초경사(打草驚蛇) – 풀숲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
칠 타(扌/2) 풀 초(艹/6) 놀랄 경(馬/13) 긴뱀 사(虫/5)
풀숲을 건드려서(打草) 뱀을 놀라게 한다(驚蛇)는 뜻의 이 성어는 뜻이 다양하다. 먼저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해 남의 경계심만 자아낸다는 의미로 ‘긁어 부스럼 낸다’는 속담과 같다. 가만 두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공연히 건드려서 걱정을 일으킨 경우를 의미했다. 뱀을 잡기 위해선 먼저 풀을 두들겨 놀라게 해야 한다는 뜻도 있다. 뱀이 숨어 있을만한 곳의 주변부터 풀을 쳐가며 압박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로 ‘시범 케이스’와 같다. 어느 한 쪽을 징벌해서 목표한 다른 쪽도 경계하도록 하는 것을 비유했다. 오리를 때려 원앙을 놀라게 한다는 打鴨驚鴛鴦(타압경원앙)도 같은 뜻이다.
‘三十六計(삼십육계)’는 孫子兵法(손자병법) 만큼이나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권수와 작자, 편찬 시기 등은 미상이다. 5세기 까지 구전된 내용을 가지고 明末淸初(명말청초)에 한 무명학자가 필사본으로 엮은 것이라 한다. 공격할 때의 전략을 모은 攻戰計(공전계)의 맨 처음 13계에 나오는 것이 뱀을 찾기 위해 풀밭을 두드린다는 이 계책이다. 적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미리 살펴 공격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변죽을 울리기만 해서 적의 정체를 드러내게 하는 이점이 있고, 아군의 전력을 일부러 노출시켜 적의 예기를 먼저 꺾는 효과도 있다.
唐(당)나라의 문신 段成式(단성식, 803~863)이 엮은 수필집 ‘酉陽雜俎(유양잡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王魯(왕로)라는 관리가 어느 지역의 수령으로 있을 때 국법을 어기고 온갖 비리로 재물을 긁어모았다. 참다못한 백성들이 연명으로 공소장을 썼다. 왕로의 측근으로 있는 主簿(주부)가 남의 재산을 횡령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본 왕로는 자신도 적지 않게 남의 재물을 수탈했고, 주부의 죄목도 대부분 연관이 있었으므로 속이 뜨끔했다. 이에 왕로는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대는 고작 풀을 쳤을 뿐이지만 나는 벌써 놀란 뱀이 되었다(汝雖打草 吾已驚蛇/ 여수타초 오이경사).’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까 미리 겁을 먹은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믿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백일하에 밝혀지게 마련이다. 악의 소굴을 치기 위해선 신속하게 주변부터 압박해서 일망타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일벌백계로 주변을 때려 중심이 기미를 알고 투항해 오면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