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1편
■ 조선시대 국정농단 사건 1편
조선시대의 궁녀는 “아는 것을 말하지 말고, 들은 것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을 철칙(鐵則)으로 삼아야했던 신분이었지만, 여종에서 궁녀가 된 성종 시대의 ‘조두대’는 당대의 권력실세로 국정을 농단했던 인물이었다.
조선 제8대 왕 예종이 승하한 뒤, 성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없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13세의 성종은 후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세조의 큰아들로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의경세자(덕종)의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신숙주를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은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희대비(세조 비)에게 수렴청정을 요청했다. 정희대비는 “나는 문자를 몰라 국정을 결단하기 어렵지만, 주상의 생모인 수빈(粹嬪:인수대비)은 문자도 알고 사리도 알아 감당할 만하다”며 사양했지만 대신들의 간청 끝에 수락했다.
이렇게 시작된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왔다. 조선시대 행정문서는 한문으로 작성되었고, 그 한문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이었기에 문제는 더 심각했다. 문자를 모르는 정희대비의 수렴청정은 우선 승정원에 모이는 문서를 승지들이 모두 한글로 번역했다. 그 다음 번역 문서를 승전색(承傳色:임금의 뜻을 전달함) 환관을 통해 정희대비에게 전달된다. 정희대비가 결재하거나 명령하는 한글 문서는 다시 승전색 환관을 통해 승지들에게 전달되고, 승지들은 이 문서를 한문으로 번역해 해당 관청에 발송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정희대비는 수시로 승전색 환관과 승지들을 만나야 했다. 여성인 정희대비는 이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대안으로 한문에 능숙한 측근 여성을 한명 내세우게 되었다. 당시 정희대비의 측근 여성 중 한문에 능숙한 여성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성종의 생모이자 정희대비의 큰며느리인 수빈 한씨(인수대비)였고, 다른 한 명은 조두대(曹豆大)라는 여종이었다. 큰며느리 수빈은 한문을 잘 안다는 이유로 수렴청정 적격자로 추천되기까지 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희대비는 조두대라는 여종을 측근으로 두게 되었다.
조두대는 환관과 승지를 대신해 정희대비의 결재문서와 명령문을 작성했다. 그리하여 정희대비에게 가는 모든 행정문서는 조두대를 거쳤고, 결재문이나 명령문 역시 조두대의 손을 거치게 되었다. 정희대비와 조두대의 역할에 따라 승정원을 비롯한 궁중기구는 물론 의정부와 6조 등 중앙정부조직이 유명무실화될 수도 있었다. 천민 출신인 궁녀 조두대가 정희대비와 함께 권력구조의 정점에 자리하고 모든 문서를 담당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