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노推奴 2편
■ 추노(推奴) 2편
추노에 대한 기록은 숙종, 경종, 영조실록에 주로 기록되어 있다. 나라에서 기근이 들었을 때마다 금지하였지만 관리들이 이를 어기고 도적을 잡는다는 핑계로 사사로이 이들을 붙잡아서 사고 파는 행위로 돈을 벌었고, 이 과정에서 관리들끼리 결탁하여 노비가 아니라 민가의 백성들을 잡아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 후기에 들어 돈이 궁해진 몰락양반이 과거 자신의 소유였던 외거노비로부터 몸 삯을 받으러 몇 십 년 전의 호적이나 노비매매문서 하나 달랑 들고 추쇄에 나서기도 하였다. 노비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는 노비 아니라고 잡아떼기 마련인데,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송사가 질질 끌기 십상이라 관가에서는 싫어했다고 한다. 노비에게 돈을 받으러 다닐 정도인 양반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은 노비만도 못한 경우가 많아서 이를 이용한 노비 쪽에서 뇌물로 관리를 매수하거나 양반을 몰래 죽여 버리는 일도 있었다.
조선의 계급 체계는 모순 그 자체였다. 양민에서 노비가 되거나,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할 순 있어도 노비가 그 신분을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조선 사회에서 노비를 벗어날 길은 도망이나 죽음뿐이었다. 모순된 계급 사회에서 필요에 의해 탄생한 추노꾼은 조선의 어두운 사회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추노를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주인이 노비가 있는 지역에 가 집에 있는 호적의 내용을 바탕으로 관에 소지(민원서류)를 작성해서 당사자를 불러온 뒤, 추궁해서 사실이면 다시 잡아가는 형태였다. 지방관청 공문서가 왜란, 호란,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죄다 소실되어버려 관청의 노비 관리나 추노 등을 제대로 연구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었다. 실록에 있는 내용으로 사실을 알 수는 있지만, 1차 사료가 아니므로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한계이다.
‘추노’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중 하나는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라는 점이다. 역사 속 음지에 가려져 있던 \추노\들의 삶을 조명해 조선시대의 어두운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갖는 특별한 매력이었다. ‘추노’에는 "종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며,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민초(民草)들의 생생한 절규가 있었다. 노비로 전락해 이마에 낙인이 찍히고, 도망갔다는 이유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으며, 가축보다 못한 존재로 업신여김을 받는 조선시대 하층민들의 모습을 잔인할 만큼 자세히 그려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