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태해치 2편
■ 해태(해치) 2편
해치의 권위 있는 자태 뒤에는 법과 정의에 따라 공명정대한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조선왕조의 정치철학과 요순시대의 이상 정치를 이 땅에 펼치려 했던 조선 임금의 원대한 뜻이 숨어 있다. 해치는 경복궁 근정전의 처마마루에도 놓여져 있는데, 이 것은 전각 안에서 정사를 돌보는 임금의 공평무사(公平無私)를 비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해치는 2010년 광화문 복원과 함께 재차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으나, 원래는 광화문 70~80m 전방에 있었다. 2008년 5월 13일 서울시에 의해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선정될 당시, 상징동물 선정을 위한 자문회의에서 학자들 간에 광화문 해치상의 정체와 성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해치가 시비곡직을 판결할 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외뿔로 응징하는 짐승임을 감안할 때 광화문 양쪽의 동물상은 뿔이 없으므로 해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치상은 맞지만 수문장으로 그 성격이 바뀌면서 뿔이 없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송사와 관련 있는 신수(神獸)라면 사법부 건물 앞에 있어야 하는데, 궁궐 정문 앞에 있다는 점이 의심스럽다는 사람도 있었다.
광화문 앞 해치상의 외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몸은 동전 모양의 비늘로 덮여 있고, 부리부리한 눈에 주먹코가 돋보이며, 입술 사이로 앞니와 송곳니가 드러나 있으며, 다리에는 화염각(火焰脚, 불꽃 모양의 갈기)과 나선형의 갈기가 선명하고, 꼬리는 엉덩이를 거쳐 등에 올라붙어 있다. 정수리는 약간 불룩할 뿐이고 문제의 외뿔은 나타나 있지 않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보면 경복궁 중건 후 2년째 되던 1870년(고종7년) 어느 날, 고종은 광화문 앞에서 아무나 말을 타고 다니는 일이 없도록 사헌부에 전교(傳敎:임금의 명)를 내렸다.
"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를 정하니, 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는데, 이것은 노마(路馬, 임금의 수레를 끄는 말 또는 임금이 타는 말)에 공경을 표하는 뜻에서이다."
이 내용에서 우리는 광화문 해치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첫째 고종이 불렀던 대로 광화문 앞 석수의 이름이 해치이고, 둘째 해치상과 광화문 사이 지역이 임금의 수레만 들어갈 수 있는 성역으로 설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해치상을 대궐 문 앞에 세우는 제도는 중국 초나라 때부터 있었다. 그 뜻은 모든 관원들로 하여금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으로 법과 정의에 따라 매사를 처리하게끔 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도 국회의사당과 대검찰청 앞에 해치상이 세워져 있다. 이는 해치처럼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항상 경계하며, 정의의 편에 서서 법을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