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담 서경덕 3편
■ 화담 서경덕 3편
황진이와의 에피소드는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콧대 높은 벽계수를 나귀에서 떨어지게 하였고, 또 면벽참선하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삼십년 공부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었던 황진이는 서경덕도 자기 치마폭에 무릎 꿇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넘어오지 않는 남자가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황진이가 그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황진이는 서경덕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한다. 처음 제자로 들어가 이리 저리 기회를 엿보며 서경덕을 유혹하려는 계획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혹에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 날이 저물어도 돌아갈 생각을 않고 있던 황진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뒹구는 것이었다. 물론 꾀병이었다. 화담이 알면서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어쨌든 아프다는 황진이에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이부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옆방으로 건너가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다. 황진이가 밤새 화담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렸으나 화담은 밤새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얼마 뒤에 황진이가 또 화담에게 찾아갔는데,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황진이는 먼저 지족선사에게 써먹어 성공한 그 수법을 다시 동원했다.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비에 흠뻑 젖어 육감적인 몸의 곡선과 속살이 훤히 비쳐 보이는 차림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도 화담 선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황진이가 온갖 교태를 다 부려도 빙긋이 웃기만 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천하의 황진이도 두 손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 라고 말하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부탁했다. 화담의 고매한 인품에 탄복한 황진이는 그 뒤로 자주 화담선생을 찾아가 술도 권하고 시도 주고받고 때로는 거문고를 연주하며 우정(?)을 나누었다. 화담은 황진이가 올 때마다 흔쾌히 맞아 즐거운 한때를 더불어 보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제 간과 같은 사이였지 남녀 간의 만남은 아니었다.
황진이는 서경덕에게서 우주의 진리, 인성의 본질, 인간의 참된 삶과 사랑을 배웠다. 그래서 그곳에서 서경덕과 영원한 스승과 제자 사이로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생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친분을 나누었다. 요즘말로 하면 남사친 · 여사친 관계라고나 할까! 서경덕이 어찌 천하의 재녀(才女) 황진이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의 고매한 인품과 학식과 도력(道力)이 본능을 이겨낸 것이리라.
- 4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