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풍습일까 3편
■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풍습일까 3편
그렇다면, 조선총독부가 《조선동화집》을 편찬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1924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총서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책을 편찬한 곳은 총독부 학무국 편집과. 이곳은 식민지 조선의 교육에 필요한 학교 교과서 편찬과 각종 교육 관련 발간물을 담당하는 부서로서, 지금으로 치면 교육부 산하 교육개발원이나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곳이다. 당시 편집과장은 오다 쇼고(小田省吾)로 나중에 경성제국대학 교수가 되었고, ‘고종실록’과 ‘순종실록’ 편찬을 책임지기도 했던 대표적인 식민사학자이다. 때문에 《조선동화집》의 편찬 동기와 의도를 일제의 식민통치와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시기에 나온 손진태의 《조선민담집》이나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손진태는 고려장 이야기를 싣고 있기는 하나, 제목을 ‘기로전설’이라 하고 있으며, 박영만이 채록한 75편의 전래동화 중에는 고려장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동화집》이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이 책은 심의린의 《조선동화대집》(1926),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1940)과 함께 일제시대 3대 동화집으로 꼽혔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어린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전래동화의 원전(原典)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전래동화집 중에는 《조선동화집》의 고려장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노인을 버리는 지게’라는 제목 아래 고려장을 마치 고려 때 실제 있었던 일처럼 써놓은 전래동화집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고려장이 고려시대의 장례 풍습이 아니라면, 고려의 실제 장례 풍습은 무엇이었을까?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주로 화장을 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절에서 스님의 인도 아래 화장하여 유골을 절에 모셔두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항아리나 작은 돌관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고, 산이나 물에 뿌리기도 했다. 화장 아닌 매장도 했다. 특히 왕들은 매장을 주로 했다.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구덩이를 파고 묻거나, 풀 따위로 덮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풍장(風葬)이라 하여 시신이 시간이 흘러 저절로 바람에 날려 없어지게 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장례풍습이 아니었고, 일본에 의한 악랄한 역사 왜곡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 속에 녹아있는 식민시대의 잔재가 하루빨리 사라질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노력이 있어야만 우리의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