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의 남자들 4편
■ 황진이의 남자들 4편
두 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이었다. 개성 유수 송공(송염 또는 송순이라고도 한다)이 처음 부임했을 때 관아에서 조그만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 황진이가 불려왔는데, 풍류깨나 즐길 줄 아는 송공은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황진이가 범상치 않은 여자임을 알아보고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하기를 “이름을 헛되이 얻지 않은 것이로군!” 하고 칭송했다. 그때부터 황진이가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황진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원근을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자칭 타칭 풍류호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 송도에 새로 나타난 기생 황진이를 꺾어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기에게 허신(許身)은 있어도 허심(許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황진이는 웬만한 사내에게는 허심은커녕 허신의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재주와 미모가 빼어난 만큼 황진이는 호락호락 아무 사내에게나 헤프게 정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 대신 황진이는 이처럼 자신을 찾아오는 양반의 자제들이나, 잘난 척 거드름이나 피우는 당대의 명사들을 마음껏 농락하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듯 했다. 황진이의 이런 태도는 신분차별,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적 모순과 사회적 병폐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빼어난 용모와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천한 신분의 어미 몸에서 태어난 탓에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정상적인 혼인은 물론, 떳떳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기에 그런 한을 이런 식으로 풀어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남자는 선전관(宣傳官) 이사종이다. 황진이와 선전관(宣傳官) 이사종과의 러브스토리는 야사를 모아놓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나온다. 웬만한 남자는 눈에 차지도 않았던 황진이와 6년간이나 함께 동거한 행운의 사나이다. 이사종은 당대의 소문난 명창이요 풍류객이었다. 황진이와 이사종의 만남에 대해 야사에서는 천수관 근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사종을 황진이가 발견하고 먼저 접근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황진이가 이사종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는 반면, 이사종은 시종일관 무뚝뚝한 태도로 황진이를 대한다. 그러나 이사종의 그러한 태도로 인해 황진이는 더욱 그의 눈빛을 흔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서 처음에는 서로의 노래에 반하고 다음으로는 서로의 인물에 반해 더불어 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기발했다. 6년간 함께 살 되, 3년씩 상대방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살기로 하고, 그 동안의 생계 또한 집주인이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황진이와 이사종은 이미 500여 년 전에 계약동거를 실행한 선구자였던 것이다. 황진이는 스스로 짐을 꾸려 한양 이사종의 집에 가서 첩살이를 자청했다. 이사종의 가솔(家率)을 극진히 돌보면서 3년을 보내고, 다음 3년은 이사종이 황진이의 집으로 와서 함께 살았다. 6년이 지나자 처음 약속대로 깨끗이 미련 없이 헤어져 남남으로 돌아갔다.
- 5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