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수요일

궁녀宮女 4편

■ 궁녀宮女 4편

■ 궁녀(宮女) 4편

입궁 연령은 지밀이 가장 어려 4∼8세, 침방·수방이 6∼13세, 그 밖은 12∼13세가 관례였다. 원칙적으로 신분, 조상, 건강 등의 까다로운 조건으로 선발하였다. 그러나 대개 연줄과 세습이라 할 수 있으며, 친인척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았다. 궁녀의 선출은 원칙적으로 10년에 한번이었지만 예외도 있었다. 지밀나인의 경우 조건이 까다로워서 상궁들이 두세번씩 선을 보러 나갔다. 왕실에선 좋은 출신의 궁녀를 원하여 양가에서 강제로 차출해 수차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10세 이상의 딸 가진 집안에서는 서로 다투어 혼인을 시켜 조혼의 풍습까지 생겼다. 조선 후기 경종 3년에 이를 금하는 어명이 내려졌고, 영조 22년(1746년)에 이르러 양녀(良女) 차출을 금지하는 제도가 세워져 양인 여성을 궁녀로 만들었을 경우 60대의 장형과 1년의 도형에 처해졌다.

근무는 대개 하루씩 당번과 비번을 교대로 했다. 궁궐내의 모든 궁녀들은 입궁(入宮)에서 퇴출(退出)까지 원칙적으로 종신제였다. 왕의 직계 및 그 배우자 외에는 후궁도 궁중에서 죽을 수 없었으므로, 늙고 병들면 궁녀는 궁궐을 나가야 했다. 가뭄으로 궁녀 방출이 결행될 경우(단, 젊은 궁녀), 모시고 있던 상전이 승하했을 경우에도 중도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궁궐에서 나온 뒤에도 혼인이 금지되는 등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결국 궁녀 제도는 절대군주국가 시기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궁궐에서 일하는 궁녀는 일단 모두가 ‘왕의 여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행동이 바르고 얼굴이 예뻐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궁녀라고 해서 다 예쁘게 생긴 것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수대’라고 하는 궁녀가 있었는데, 고수대는 예쁘기는커녕 흉물스러울 정도로 덩치도 크고 못생겨서 고수대를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고수대는 오히려 못생긴 얼굴 때문에 궁녀로 뽑힐 수 있었다. 고수대와 같은 궁녀를 액막이 궁녀라고 하는데, 나쁜 기운이 궁으로 들어오다가 못생긴 액막이 궁녀를 만나면 되돌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액막이 궁녀가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특별히 어떤 일을 한 것은 아니고, 다른 궁녀들과 마찬가지로 부엌에서 불을 때거나 물을 긷는 일을 했다.

늙고 병들어 궁에서 나온 궁녀들은 함께 모여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며, 종교를 통해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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