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이의 남자들 5편
■ 황진이의 남자들 5편
네 번째 남자는 양곡(陽谷) 소세양이다. 소세양은 중종 초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 나중에 대제학을 지냈는데, 그 또한 당대의 풍류남아를 자처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황진이를 만나기 전에는 평소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끗이 끝내겠다.” 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큰소리치고 송도에 내려가 황진이를 만났는데, 과연 절세가인(絶世佳人)이었다. 두 사람은 한 달을 기약하고 동거를 했다. 어느덧 그날이 다가와 이별의 술잔을 나누는데, 소세양은 안절부절하고 황진이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내 내일 아침 우리 이별한 뒤라도 그리는 정은 푸른 물결처럼 끝없으리니’
이 애절한 시 한수에 소세양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그녀와 한동안 더 머물러 살게 되었다. 황진이가 일생을 통해 남성으로써 사랑했던 이는 바로 소세양이라고 한다. 황진이가 소세양을 그리워하며 쓴 시를 가수 이선희가 노랫말로 불렀던 ‘알고 싶어요(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 생각 하세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 소세양과 황진이의 사랑 이야기는 소세양의 신도비(神道碑: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석)에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다. 사대부 가문의 인물이 한낱 기생을 연모(戀慕)했던 사실을 신도비에 각인(刻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섯 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이다. 벽계수의 본명은 이종숙(李琮淑). 세종대왕의 17번째 아들인 영해군의 아들 이의(李義)의 셋째 아들이므로, 세종대왕에게는 증손자가 된다. 이런 종실(宗室)의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이고,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라고 했다. 벽계수가 그 말에 따라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쫒아왔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시조 한 수를 읊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황진이의 재주와 미모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찬미하고 만나기를 원한다고 하자, 벽계수는 자기는 그런 기생 따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 말을 들은 황진이가 벽계수의 사람됨을 시험하기 위해 송도로 내려온 그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 6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