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추인낙혼(墜茵落溷) - 방석에 떨어지고 뒷간에 떨어지다,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다.
떨어질 추(土/12) 자리 인(艹/6) 떨어질 락(艹/9) 어지러울 혼(氵/10)
運(운)에 관한 격언이 있다. ‘행운과 불운은 칼과 같다.‘ 운이 좋아 칼자루를 쥐면 쓸모가 있게 되고, 칼날을 쥐게 되면 상처를 입는다. 또 한 가지만 계속되지 않으니 절망할 것도 없다. 뜻밖에 행운을 만나면 ’홍두깨에 꽃이 피기‘도 하고 운수가 나빠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 경우도 맞닥뜨린다.
낙엽이 떨어졌을 때 책장에 고이 간수되는 것도 있고, 떨어지자 말자 쓰레기통에 처박히기도 한다. 좋은 자리에 떨어지고(墜茵) 냄새나는 뒷간에 떨어지기도 한다(落溷)고 어려운 글자로 썼지만 이것도 꽃잎의 운수를 말했다. 墜溷飄茵(추혼표인), 墮溷飄茵(타혼표인)으로 순서를 달리 해도 뜻은 같다.
꽃잎이 제 의지대로 앉을 수 없으니 바람 부는 대로 깨끗한 방석이나 변소에도 떨어진다는 것은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좋은 때를 만나거나 그렇지 못할 때가 있음을 비유한다.
중국 南北朝(남북조)시대 梁(양)나라에서 활동한 꼿꼿한 선비 范縝(범진, 縝은 고울 진)의 일화에서 성어가 유래했다. 그는 어렵게 공부하여 경전과 학술에 능통했고, 어려서부터 귀신을 믿지 않은 무신론자로 당시 성행하던 불교를 반대했다. 독실한 신도였던 竟陵王(경릉왕) 蕭子良(소자량)이란 왕자와 논쟁하면서 이 이야기로 반박한다.
소자량이 범진에게 인과를 믿지 않는데 세상에는 왜 부자와 빈자가 있게 되는지 물었다. 범진은 사람의 삶이란 것이 나무에 핀 꽃에 비유할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 가지의 같은 꼭지에서 피었던 꽃이 바람에 따라서 ‘주렴에 스치면 방석에 떨어지고 울타리에 걸리면 뒷간에 떨어집니다(自有拂簾幌墜於茵席之上 自有關籬牆落於糞溷之側/ 자유불렴황추어인석지상 자유관리장락어분혼지측)’고 했다. 방석에 떨어지면 왕자의 처지이고 자신은 뒷간에 떨어진 것과 같다는 논지였다. 南朝(남조) 네 왕조의 역사를 唐(당)나라 李延壽(이연수)가 쓴 ‘南史(남사)’의 열전에 수록돼 있다.
낙화가 떨어진다고 하니 연상되는 시조가 있다. 광풍에 배꽃이 떨어져 이리저리 날리다 거미줄에 걸렸는데 ‘저 거미 낙화인줄 모르고 나비 잡듯 하누나’하는 李鼎輔(이정보)의 작품, 간밤에 부는 바람에 뜰 가득 복사꽃이 떨어졌는데 아이가 쓸려 하자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라고 한 鮮于浹(선우협)의 시조다.
바람에 처지가 바뀐 꽃잎이라도 모두 같은 꽃이라고 한 것에는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나보다(이형기).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