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0일 수요일

백어리니白於里尼

■ 백어리니白於里尼

■ 백어리니(白於里尼)

백어리니는 문종이 세자이던 시절 세자빈 권씨가 친정에서 데리고 온 여종이었다. 그녀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총명했다. 세자빈 권씨는 경혜공주를 출산한 후 총명한 백씨를 경혜공주의 유모(乳母)로 들였다. 하지만 계유정난 이후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이 역모로 몰려 죽자, 백어리니는 수양대군에게로 넘겨졌다.

파란만장 기구한 삶을 살았던 경혜공주가 원수같은 세조가 왕으로 있는 궁궐에 자식들을 맡기고 홀로 떠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친정노비이자 유모였던 백어리니의 도움이 컸다. 백어리니는 당시에 세조의 손자인 자을산군(성종)의 유모였는데, 정희왕후 윤씨(세조 비)와 함께 "자식들을 위해서 왕(세조)을 용서해야한다" 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수양대군은 총명한 백씨를 자신의 큰아들(의경세자)에게 주었고, 그 인연으로 백씨는 훗날 성종이 되는 자을산군의 유모가 되었다. 자을산군은 백씨를 마치 생모처럼 존중했으며, 훗날 인수대비(성종 비)가 되는 수빈 한씨 역시 백씨를 극진히 신임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백씨는 성종이 즉위한 후 봉보부인(奉保夫人)의 자격으로 입궁(入宮)했다. 이처럼 인수대비와 백씨의 인연은 정희대비와 조두대의 인연 못지않게 돈독하여, 정희대비가 조두대를 측근으로 중용했듯이 인수대비 역시 백씨를 측근으로 중용하여 제2의 비선실세로 국정농단을 또 다시 자행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희대비 사후(死後)에는 궁중의 비선실세가 조두대 한명에서 백씨까지 더하여 두 명으로 늘었난 셈이다. 당연히 권력실세에 빌붙으려는 자들은 조두대와 백어리니에게 줄을 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이공(李拱)이라는 인물이다. 이공은 세종 대의 유명한 역법학자 이순지의 아들인데, 실록에는 이들의 국정농단 실태가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이공(李拱)이 봉보부인 백씨의 조카딸을 첩으로 삼고 백씨 부부를 부모처럼 섬겼다. 순천부사가 되어서는 몰래 뇌물을 들여 백씨와 깊이 사귀었다. 임기가 만료되어 곧 승지가 되었다가 불상사(不祥事)로 파직되었는데 또 얼마 안 되어 특별히 가선대부에 올라 호조판서가 되었다. 백씨가 아들을 장가 보내던 날, 이공이 백씨의 집안일을 마치 늙은 종처럼 맡아 보았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다 비웃었다. 하지만 이공은 권세와 이익을 달게 여겨 스스로 좋은 계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안주목사가 되어서는 더욱 부지런히 섬겨 뇌물을 땅으로 나르고 바다로 날라 바쳤다.” 《성종실록: 성종 18년(1487년) 9월 28일》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