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종의 여인 인순왕후
■ 명종의 여인 인순왕후
명종은 중종 27년(1532년) 5월에 청송 심씨 심강과 전주 이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심씨와 결혼했다. 심씨는 12살, 경원대군은 10살이었다. 곧 이어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면서 14세에 왕비가 되었다. 명종은 왕비 외에 후궁을 6명이나 두었지만 슬하에 자녀는 인순왕후가 낳은 순회세자 뿐이었다.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 글자그대로 어질고 순한 지혜로운 왕비였다. 세종 비 소헌왕후에 비견할 만한 보기 드문 왕비라고 칭송받았다. 시어머니 문정왕후의 치맛바람은 대단했고, 상대적으로 명종은 마마보이였다. 문정왕후는 자기 아들이 12살에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말이 수렴청정이지 외척의 세력을 끼고 하고 싶은 대로 다했으니 여왕이나 다름없었다.
남편 명종은 유약하고, 시어머니는 드세고, 조정의 실권은 시어머니의 친정집안인 윤씨 집안이 다 장악하고 있으니 며느리 인순왕후는 그야말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으리라. 더구나 명종과 인순왕후 사이의 외아들인 순회세자가 14살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이후 왕비 소생의 적장자 왕위계승은 없음) 순회세자는 가례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사도 두지 못했다.
엄마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마마보이 명종도 왕으로서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외가의 윤씨들이 하도 설치니 왕으로서 권위도 서지 않았다. 뭐라고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바로 문정왕후 귀에 들어갔다. "아니 주상! 이 애미와 외삼촌 윤원형이 없었다면 주상이 어찌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겠소?"
이러니 찍 소리도 못했을 것이고, 나라꼴도 말이 아니었다. 안으로는 을사사화가 일어나 소윤파가 대윤파를 몰아내고, 외척 윤씨 편에 붙은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수탈은 극에 달했다. 설상가상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까지 겹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그래서 이 시절에 그 유명한 의적 임꺽정이 출현하게 된다. 아쉽게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만............
명종은 1567년(재위22년) 6월 아직 젊은 나이인 34세에 후사도 없이 죽었다. 지혜로운 인순왕후는 남편 명종이 죽자마자 바로 옥쇄를 감추고 친정의 도움을 받아 중종과 후궁 창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대원군의 막내(중종의 서손이며 명종의 이복 조카)인 하성군을 왕으로 임명했다. 이 분이 선조이다(조선 최초의 서자 출신 임금이며, 최초의 방계 혈통의 임금). 당시 선조는 16살이었으므로 인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기 전에 선조가 친정(親政)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자, 수렴청정을 거두고 물러났다. 대신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기 색깔을 고집하지 않으며 현명하게 처신한 인자하고 지혜로우신 인순왕후는 1575년(선조8년) 1월, 창경궁에서 44세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