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확지굴 이구신야尺蠖之屈 以求信也 -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해서이다.
척확지굴 이구신야(尺蠖之屈 以求信也) -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다시 펴기 위해서이다.
자 척(尸/1) 자벌레 확(虫/14) 갈 지(丿/3) 굽힐 굴(尸/5) 써 이(人/3) 구할 구(水/2) 믿을 신(亻/7) 이끼 야(乙/2)
자벌레는 작은 나뭇가지와 같은 모양으로 붙어사는 자벌레나방의 애벌레다. 한자로 尺蠖(척확), 또는 더 어렵게 蚇蠖(척확)이라고도 한다. 배의 다리가 퇴화하여 기어갈 때 꼬리를 가슴 가까이 붙여 움츠렸다가 떼었다 한다. 미물이라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 굼벵이가 지붕에서 떨어질 때 매미 될 셈이 있어 떨어진다고 하는데 자벌레는 어떨까. 자벌레가 앞으로 움직일 때 굽혔다가 펴는 것이 자로 재는 것 같다고 이름이 붙여졌는데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자벌레가 한 자의 몸을 굽히는 것은 다음에 더 나아가기 위한 것으로 봤다.
유교 三經(삼경)의 하나인 ‘易經(역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과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책이다. 周易(주역)이라 하듯이 周(주)나라부터 내려온 길흉의 지혜와 우주론적 철학이라니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八卦(팔괘)와 六爻(육효)를 文王(문왕)과 周公(주공)이 설명했다는 것이 繫辭(계사)인데 자벌레의 교훈은 하편에 실려 있다.
부분을 인용해 보자.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다시 펴서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이고, 용이나 뱀이 몸을 숨기는 것은 몸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尺蠖之屈 以求信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척확지굴 이구신야 용사지칩 이존신야).’ 믿을 信(신)은 펼 伸(신)의 뜻, 蟄은 숨을 칩.
자벌레의 굽히고 펴는 행동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이니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이렇다. ‘사물의 이치를 치밀하게 생각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서는 것은 세상에 널리 쓰게 하기 위함이요, 쓰는 것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덕을 숭상하기 위해서이다(精義入神 以致用也 利用安身 以崇德也/ 정의입신 이치용야 이용안신 이숭덕야).’ 사람에게도 자벌레의 屈伸(굴신)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굽히는 것을 잘 참아야 미래의 성공을 가져 오고, 사회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어진 일을 처리할 때 독일 병정같이 무조건 앞으로만 가는 사람이 잘 눈에 띄고 칭찬 받는다. 그러다 앞에 의도하지 않던 장애가 나타나면 쉽게 꺾이고 결국 일을 망친다. 두 걸음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라는 작전상 후퇴도 할 수 있어야 더 먼 길을 갈 수 있다. 종종 비유되는 조선 丙子胡亂(병자호란)때 崔鳴吉(최명길)의 主和論(주화론)이 거센 비판을 받았다가 결국 나라를 보존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곧게만 가다가는 부러진다.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벌레의 굴신이 필요할 때가 있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