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일 화요일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적빈여세(赤貧如洗) - 맨몸뚱이에 씻은 듯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

붉을 적(赤/0) 가난할 빈(貝/4) 같을 여(女/3) 씻을 세(氵/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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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란 속담은 남이 도운다고 모두 면할 길은 없다는 말이다. 貧室救助 國亦難能(빈실구조 국역난능)으로 한역된 말대로다. 입에 풀칠한다는 말이 뜻하듯 겨우 연명하는 사람이 많았던 옛날은 더욱 어려웠을 터다. 가난한 생활을 나타내는 성어가 그래서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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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의 빈한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 많은 중에 맨몸뿐이라는 赤貧(적빈)은 정도가 더한 표현이 된다. 붉을 赤(적) 글자가 색깔만이 아니고 ‘비다, 없다’의 뜻과 ‘벌거벗다’의 의미도 있다. 赤手(적수)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맨손, 赤手空拳(적수공권)이 맨손과 맨주먹이니 이때는 ‘없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숨김이 없을 때 赤裸裸(적나라)하다는 것은 ‘벌거벗다‘의 의미다. 몸뚱어리뿐인 진짜 가난, 알가난이 적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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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씻은 듯하다(如洗)면 아주 깨끗하다는 뜻 외에도 큰물 뒤끝엔 남는 것이 없다는 말과 같이 씻겨간 듯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다. 맨몸뚱이에 가진 것이 물에 씻긴듯하다는 이 두 말이 합쳐진 성어는 뜻으로 나타내서인지 사용이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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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에서는 한 단어씩 각각 사용된 경우는 제법 보이지만 합친 성어로는 db에서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淸(청)나라 때의 ‘儒林外史(유림외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라 하니 18세기 중반이다. 일본에선 에도江戶/ 강호 후기에 原善(원선)이 쓴 72명의 유학자 전기 ‘先哲叢談(선철총담)’ 이후로 자주 쓰게 됐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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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를 둘러싼 비리를 통렬히 비판한 풍자소설 ‘儒林外史(유림외사)’는 청나라 문학자 吳敬梓(오경재, 1701~1754)의 작품이다. 성어가 사용된 부분은 ‘노인에게는 두 아들과 네 손자가 있고, 그 집은 여전히 매우 가난하다(老人家兩個兒子 四個孫子 家裏仍然赤貧如洗/ 노인가량개아자 사개손자 가리잉연적빈여세)’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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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貧如洗(가빈여세)는 조금 앞선 元(원)나라서 사용됐다고 나타난다. 뜻을 바로 알 수 있는 이 말의 출전보다 의식주 별로 어떻게 가난을 나타냈는지 대표적인 것을 알아보는 것이 더 의미가 있겠다. 먼저 남루한 집은 家徒四壁(가도사벽), 窺如七星(규여칠성), 不蔽風雨(불폐풍우) 등으로 벽이 없고 천장에서 하늘이 보일 정도다. 옷과 신발이 너덜너덜함은 裘弊金盡(구폐금진), 衣結屨穿(의결구천) 등이 잘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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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부지할 양식이 떨어져 바닥인 말은 簞食瓢飮(단사표음), 釜中生魚(부중생어), 三旬九食(삼순구식), 朝虀暮鹽(조제모염) 등이 있다. 이러한 모든 부족함을 딛고 淸貧(청빈)하게 살아간 顔貧一瓢(안빈일표)의 제자 顔淵(안연)을 孔子(공자)가 극찬한 이후 安貧樂道(안빈낙도)를 이상으로 한 군자들은 있어 왔다. 하지만 이들이 나물 먹고 물마시며 팔베개 베고 잔다고 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지 최소한의 의식주는 필요하다.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팔다리 누일 데 없는 곳이 없어 하루하루를 쩔쩔 매는 오늘날의 신 하층민들에겐 사치일 뿐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