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삼혹四知三惑 – 네 가지 아는 것과 세 가지 유혹
사지삼혹(四知三惑) – 네 가지 아는 것과 세 가지 유혹
넉 사(囗/2) 알 지(矢/3) 석 삼(一/2) 미혹할 혹(心/8)
두 사람만의 비밀이라도 하늘, 신, 너와 나 벌써 넷이 알고 있다는 것이 四知(사지)다. 뇌물을 주고받을 때 아무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들통이 난다고 경계하는 유명한 말이다. 술과 여색, 재물 등 세 가지 앞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三惑(삼혹)이다. 이 두 가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말을 아울러 부르는 것은 모두 중국 後漢(후한) 때의 청렴의 대명사 楊震(양진, 50~124)과 그 아들 楊秉(양병, 91~165)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때의 宋(송)나라 范曄(범엽)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에는 양진의 선대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양진의 부친 楊寶(양보)는 어릴 때 올빼미의 공격을 받아 다 죽어가는 꾀꼬리를 정성껏 치료해 준 일이 있었다. 꿈에 서왕모가 반지를 보내줬는데 그것으로 후손들이 고귀하게 됐다는 黃雀銜環(황작함환)의 보답을 받았다. 과연 아들 양진은 학식 덕망과 함께 청렴결백하여 關西孔子(관서공자)로 불렸다. 제자를 가르치다 나이 쉰에 벼슬자리에 부름을 받고 나갔다.
그가 東萊(동래)지역의 태수로 부임하면서 이전에 천거한 적이 있던 王密(왕밀)이란 사람이 다스리던 지역에서 묵게 됐다. 왕밀이 밤에 숙소로 찾아와 황금 10근을 바치면서 아무도 모르니 받아 주십사 했다. 양진은 거절하며 말했다.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天知神知 子知我知 何謂無知/ 천지신지 자지아지 하위무지)?’
양진의 강직한 성품을 이어받아 둘째 아들 양병도 처신이 곧았다. 평생 술을 멀리 했고, 젊어서 아내가 세상을 뜨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그가 한 지역의 감찰관으로 있을 때 누군가 거금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문을 굳게 잠그고 받지 않았다. 양병이 말했다. ‘나는 술, 색, 재물 세 가지에 현혹되지 않는다(我有三不惑 酒 色 財也/ 아유삼불혹 주 색 재야).’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뿐 아니라 양진의 손자 楊賜(양사), 증손자 楊彪(양표)도 모두 청렴한 고위직을 지내 꾀꼬리를 살린 덕을 입었다.
우리나라서도 淸白吏(청백리)를 다수 배출하고 청렴한 공직자가 있지만 수시로 나타나는 부패 관리로 더럽히고 만다. 재벌과 결탁한 뇌물, 자재를 도입하며 뒷돈을 받는 전문 고위직 등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공직이 깨끗해야 사회가 맑아지는데 음성적으로 이어진다니 답답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