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1일 화요일

백문불여일견ㅣ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ㅣ百聞不如一見

백문불여일견ㅣ百聞不如一見

○ 백번 듣기보다 한 번 봄이 낫다

○ 百(일백 백) 聞(들을 문) 不(아닐 불) 如(같을 여) 一(하나 일) 見(볼 견)

한서(漢書)의 조충국전(趙充國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전한(前漢)의 제9대 황제 선제(宣帝:BC 74~BC 49) 때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 계통의 강족(羌族)이 반란을 일으켰다. 전한의 군사는 필사적으로 반란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대패하였다. 고민 끝에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 병길(丙吉)에게 토벌군의 적임자를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는지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충국은 이미 76세의 백전노장이었지만 아직도 실전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하였다. 그는 일찍이 제7대 황제 무제(武帝:BC 141~BC 87) 때 흉노 토벌에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직속 부하로 출전하였다가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과감하게 진격하여 전한의 군사를 무사히 구해내는 전공을 세웠다. 이러한 혁혁한 전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병길이 조충국을 찾아가 선제의 뜻을 전하니 바로 자신이 적임자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선제는 조충국이 명장임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를 불러들여 강족의 토벌 방책에 대해서 고견을 물었다.

조충국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金城郡:지금의 간쑤성 난주 부근)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펴본 다음 방책을 아뢰겠습니다百聞不如一見 兵難險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라고 대답하였다. 조충국은 선제의 윤허를 받고 현지로 달려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포로로 잡힌 전한 군사로부터 정보를 캐낸 뒤 선제에게 "기병보다는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방책을 제시하였다. 이 방책이 채택된 이후 강족의 반란도 차차 수그러졌다고 한다.

이처럼 백문불여일견은 조충국의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