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저무는 양복시대
"◇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저무는 양복시대
",당연한 얘기지만 양복은 한반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서양의 옷’이란 뜻이었다. 조선 말기 개화파 정객들이 제일 먼저 양복을 입었는데, 1880년대 초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파견됐던 김옥균 서광범 유길준 윤치호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한때 양복의 다른 이름은 ‘개화복’이었다.
조선에서 서양식 양복을 받아들인 것은 이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1894년 갑오개혁 이후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고 1896년 고종의 칙령으로 서양식 육군복장을 제정했다. 1900년에는 문관들의 관복도 일본이 전수한 서양식으로 바꿨다. 1898년 배재학당이 검정 양복 스타일의 교복을, 1907년 숙명여학교가 자주색 원피스로 된 서양식 교복을 채용했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한복 교복이 금지돼 양복식 교복이 퍼졌다.
‘상의와 하의를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의 양복’으로 대표되는 양복 정장은 한국의 현대사와 호흡을 함께하며 일상 속에서 격식을 갖춘 옷차림으로 정착했다. 경조사나 중요한 만남, 공적인 행사, 면접 등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춰, 패션과 의전 사이를 오가며 드레스코드를 충족해 줬다.
이런 양복의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패션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정장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화상회의에 상의는 격식을 갖추고 하의는 반바지 차림으로 참석해도 되는 요즘 세태가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는 브룩스브러더스 등 전통 있는 정장 기업이 줄파산하고 국내 남성복 시장 규모도 8년 새 40%나 졸아들었다. 한 글로벌 의류업체 사장이 말한 대로, 코로나19는 “10년간 이뤄질 변화를 1년 만에 가져다주고 있다”.
양복, 특히 50대의 남성이 입은 양복은 최근 기성세대의 권위나 관행과 동의어가 돼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달 초 국회 본회의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논란의 중심에 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국회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관행이나 TPO가 영원히 한결같은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일할 수 있는 복장이면 된다는 주장이다.
요즘은 맞춤정장보다 경제적인 기성복이 대세지만 양복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여전히 맞춤양복을 선호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맞춤정장 가게가 즐비한 영국의 새빌로(Savile Row) 거리는 ‘원탁의 기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 ‘킹스맨’의 무대이기도 하다.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막아내는 조직의 핵심에 양복점이 등장하는 상상력에서, 유럽사회가 갖는 장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슬쩍 엿보였다. 양복과 언택트 시대의 복장,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을까.
"-동아일보 횡설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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