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탱크’ 최경주와 1m 쇠자
◇ ‘탱크’ 최경주와 1m 쇠자
최경주가 요즘 애지중지하는 도구가 있다. 1m짜리 쇠자다. 지난해 미국 댈러스 인근에서 열린 최경주 주최 주니어 골프대회에 출전한 10대 한국 선수가 퍼팅 연습에 사용했던 것이다. 퍼팅을 최대 약점으로 꼽는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은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데 미국은 찾기 힘들어요. 나중에 밥 사줄 테니 달라고 했죠.”
최경주는 매끄러운 자 위에 공을 올려두고 퍼팅 스트로크를 반복했다. “집이든 호텔방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틈만 나면 했다. 처음엔 공이 자를 벗어나기 일쑤였는데 끝까지 똑바로 굴러가게 되더라. 퍼팅에 자신감이 붙었다. 골프에선 1m 퍼팅이나 300m 드라이버나 똑같이 한 타 아닌가.” 9일 1년 만에 귀국한 최경주가 전화 통화에서 전한 사연이다.
50대에 접어든 최경주는 이번 시즌에도 PGA투어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만 50세가 넘어 챔피언스 투어 출전 자격도 얻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나서는 PGA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시험하고 있다. 그가 PGA투어를 지키고 있는 건 통산 상금 50위 이내(33위)에 진입했기 때문. PGA투어 통산 8승을 거둔 그는 상금 총액이 약 366억 원에 이른다.
장수 비결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과 뜨거운 열정이 꼽힌다. 퍼팅만 해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지름이 40mm에 이르는 홍두깨 그립을 퍼터에 장착하기도 했다. 하키스틱 같은 희한한 퍼터를 사용한 적도 있다. 퍼팅 고민에 자식뻘 선수에게서 건네받은 쇠자와 씨름하고 있지 않은가.
최경주는 30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식이요법과 근력 강화 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실천하고 있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더 강하게 운동해야 한다. 복근 단련과 회전력을 높이는 데 신경 쓰고 있다. 티오프 2시간 반 전부터 스트레칭과 기본운동에 들어간다. 최종 라운드에도 언더파를 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몇 년 전부터 최경주는 주니어 골프 장학생을 선발해 해외에서 3주가량 함께 동계훈련 캠프를 갖는다. 어린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새롭게 깨닫는 것도 많다고 한다.
최경주가 처음 PGA투어에 진출한 2000년에 한국 선수는 그가 유일했다. 혼밥이 일상이었고 낯선 아시아 선수에 대한 차별에 외로움도 컸다. 그의 개척에 힘입어 PGA투어에서는 10명 가까운 한국 선수가 뛰고 있다. 최경주는 따뜻한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이경훈이 80번 도전 끝에 PGA투어 첫 승을 거뒀을 때 2시간 가까이 기다려 축하하며 꼭 껴안아 줬다. 이번 귀국도 10일 개막하는 SK텔레콤오픈에서 후배들을 격려할 목적도 있었다. 그는 최근 메이저 대회 최고령 우승을 한 필 미컬슨을 보면서도 느낀 게 많다고 했다. “위대해 보였다. 나도 한다고 했는데 안이했고, 게을렀다.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최경주 같은 중년이 되면 ‘꼰대’나 퇴물 취급을 받기 쉬운 세상이다. 하지만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뭔가를 익히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 애쓴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게다. 101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한 법이니 나이가 들어도 놀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는 조언을 자주 한다. “나는 느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이지만 절대 뒤로는 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삶의 숫자가 아닌 숫자 속 삶이다.” 링컨 대통령의 명언이다. 끊임없이 배우며 나아가는 ‘탱크’ 최경주의 별명을 두 분이 퍽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