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질이 뇌전병으로 바뀌었듯이 치매도 이름을 바꿨으면....
◇ 간질이 뇌전병으로 바뀌었듯이 치매도 이름을 바꿨으면....
대한정신분열병학회는 2007년 환자 가족 동호회로부터 건의서를 전달받았다. ‘정신분열(精神分裂)’, 즉 정신이 갈라지고 찢어진 병이라는 이름이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며 병명을 바꿔달라는 주문이었다. 학회는 병명 개정에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과 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한 끝에 2010년 ‘조현(調絃)병’으로 바꿔 부르기로 결정했고, 이듬해 명칭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학회 이름도 ‘대한조현병학회’가 됐다.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는 뜻이다. 마음이 엉켜 정신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의 은유적 병명이다. 개명 과정에서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낙인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반론이 우세했다. 같은 이유로 간질은 뇌전증, 나병은 한센병으로 오래전부터 바꿔 부르고 있다. 환자의 인권을 위한 병명 개정은 치료 효과를 높이기도 한다. 일본에선 2002년 정신분열병을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으로 바꾼 뒤 병명을 당당히 밝히고 치료받는 환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주로 20대에 증상이 나타나는 조현병과 달리 치매(癡呆)는 노년에 시작되는 뇌질환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어리석은 미치광이’라는 뜻의 ‘치매’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비율이 43.8%였다. 대체 용어로는 ‘인지저하증’이 일순위로 꼽혔고 이어 ‘기억장애증’ ‘인지장애증’ ‘인지증후군’ ‘인지증’ 순이었다. 일본에선 2004년부터 인지증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병명이 바뀌면 교과서 질병분류표 관련법도 모두 바꿔야 하므로 개명엔 시간이 걸린다. 환자의 인권과 함께 병명의 활용도도 감안해야 한다. 복지부는 2014년에도 같은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용어 변경(21.5%)보다는 유지(27.7%)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널리 알려진 용어를 바꾸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45%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의견이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치매 환자는 75만 명으로 10명 중 1명꼴. 3년 후엔 1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란 단어를 쓸 일이 많아질 테니 ‘삶의 위엄을 내려놓아야 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개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하다. 얼마 전 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두카누맙’이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앞서 FDA의 승인을 받은 4종과 달리 병의 근본적 원인인 인지능력 감소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1년 약값은 5만6000달러(약 6300만 원). 싸고 효과 좋은 치료제가 치매를 바꿔 부르기 전에라도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동아일보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