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자르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 또 다른 모욕"
◇ 라자르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 또 다른 모욕"
유니클로 일본 본사인 패스트리테일링 그룹과 한국 법인 에프아르엘(FRL)코리아는 지난해 7월22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부족한 표현으로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공식 사과했다. 유니클로 임원이 한국의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영향을 평가절하한 데 대해 ‘간접 사과’를 한 뒤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나흘 만에 다시 고개를 숙인 것이다. 앞서 유니클로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한국 불매운동이 장기적으로 매출에 영향을 줄 만큼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살면서 남에게 사과하는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구나 잘못을 하기 마련이다. 사과를 피해갈 수 없다면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아는 게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심리학자 아론 라자르는 누구나 사과가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사과는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사과의 가치와 특성, 동기, 타이밍 등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사과는 어떠해야 할까. 전문가들이 꼽는 조건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개선 의지나 보상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과의 대상이 모호하거나 조건이 붙은 사과는 진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과했다.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런 상황에 대해 민주당 대표로 다시 한번 통절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기준에는 한참 미달한다. 비판 여론에 떠밀린 뒷북 사과인 데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썼다.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박 전 시장의 사망을 이유로 당 차원의 진상 규명도 사실상 거부하고 책임을 서울시에 떠넘겼다.
라자르는 ‘실패한 사과’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모욕이 된다고 했다. 유니클로도 사과를 잘못해 화를 키웠다.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한 법이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