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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0일 일요일

◇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 안중근 명예 훼손

◇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 안중근 명예 훼손

◇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 안중근 명예 훼손

관직에 오르자마자 왕의 신임을 얻어 개혁 정치의 선봉장이 된 인물이 있다. 노비법을 고쳐 노비가 양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능력 있는 서얼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못 선정된 반정공신들의 위훈 삭탈을 추진했다. 조선 중종 때 개혁을 진두지휘한 조광조 얘기다. 어느 시대건 개혁은 기득권 세력의 불만을 키우기 마련이다. 그는 훈구파가 기획한 기묘사화에 엮여 38세의 젊은 나이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 3월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검찰개혁을 추진한) 조국을 보면 조광조 선생이 떠오른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한양조씨 대종회는 “조광조 선조님과 우리 문중을 모독한 황희석은 사죄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뇌물수수 등 11개 죄명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장관을 조광조에 비유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정치인이 이미지 개선이나 후광 효과를 노리고 역사적 위인을 동원하는 일은 흔하다. 이른바 고인 마케팅 정치다. 부적절한 고인 마케팅은 위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아 문제가 된다.

지난 9월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이 “추 장관 아들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네티즌 사이에선 “안 의사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특혜성 병가를 갔느냐, 휴가에서 미복귀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그제 서울중앙지법 결심 공판에 ‘위국헌신군인본분’이라는 글과 안 의사 손 모양이 새겨진 흰색 마스크를 쓰고 출석해 눈총을 받았다. 검찰은 이날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경력 확인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기소된 최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최 대표가 이런 마스크를 쓴 속내를 알 길은 없다. 국민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관련 기사엔 “안중근 의사의 이름에 먹칠하지 맙시다.” “일제차 렉서스 몰면서 안중근 마스크 쓴다고?” 등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안 의사가 살아 있다면 역정을 냈을 것이다. “내가 왜 거기서 나와.”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