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흑인 법무장관에 대한 기억
◇ 어느 흑인 법무장관에 대한 기억
미국에선 장관을 ‘비서(Secretary)’라고 부른다. 우리처럼 ‘Minister’가 아니다. 각 부문을 대표해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비서 대신 다른 이름을 쓰는 장관이 딱 한 명 있다. ‘Attorney General’로 불리는 법무장관이다. 머리글자를 따 AG라고도 한다. 미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를 ‘정의를 다루는 부서’라고들 하는데, 장관 명칭만 놓고 보면 미 사회에 적용되는 법률을 집행하는 조직의 수장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검찰총장도 겸하고 있다. 법무장관의 역할에 대한 미 사회의 기대가 명칭 자체에 녹아 있다.
필자는 특파원 기간 지켜봤던 한 법무장관에 대해 강렬한 기억을 갖고 있다. 미 최초의 흑인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사진 오른쪽).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시작해서 2014년까지 6년 넘게 재직했다.
법무장관으로서 홀더의 진가는 법리 해석보다는 인종 갈등의 한복판에서 드러났다. 지금은 ‘BLM’이란 줄임말로도 익숙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의 본격적인 발화점이 된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 소요 사태였다. 10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자 ‘제2의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시간문제라고들 했다. 많은 사람이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 임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오바마는 이례적으로 법무장관을 소요 현장의 한복판으로 보냈다. 그는 퍼거슨에 도착해서 한 식당으로 갔다. 지역사회 각 분야 흑인 대표자들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이라기보다 10대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여기에 왔다.”
홀더는 반신반의하는 듯한 표정의 한 흑인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흑인들의 경찰에 대한 불신을 이해한다” “나도 흑인이라 차별을 겪어봐서 안다”고 했다. 그렇게 대학,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공권력에 불신 가득했던 퍼거슨 주민들이 가슴을 열기 시작했다. 브라운의 어머니 레슬리 맥스패든 씨는 당시 CNN과의 인터뷰에서 “홀더 방문을 계기로 달라진 게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퍼거슨 분위기에선 나오기 어려운 말이었다.
사태가 진정되는 데는 몇 개월의 시간이 더 걸렸다. 홀더는 퍼거슨을 방문한 지 한 달 뒤 장관직을 사임했다. 오바마와 임기 8년을 함께할 듯했던 홀더의 사임을 두고 워싱턴에선 해석이 분분했다. 공권력 총책인 홀더가 퍼거슨 사태 초기 대처 실패의 책임을 졌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퍼거슨 사태가 더 악화되는 걸 홀더가 막아냈다는 평가에는 이론이 없었다. 오바마는 그의 퇴임을 직접 발표하며 아쉬워했다.
미 법무장관, 그중에서도 홀더의 6년 전 이맘때 일이 떠오른 건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관련 의혹이 불거진 뒤 추 장관의 대응을 보면서다. 의혹이나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국무위원, 그중에서도 법무장관의 정치·사회적 역할에 대해 여야, 보혁 가릴 것 없이 우리 사회가 한 번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당 대표를 지낸 지역구 5선 의원 출신 법무장관에게 동시대 사람들과의 공감과 소통을 기대하는 게 그렇게 과한 것인가. 법무장관 스스로 사회적 파열음의 진앙(震央)을 자처하는 사회. 당분간 협치나 공존, 사회적 치유, 이런 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사치 아닐까 싶다.
-동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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