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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9일 토요일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 원수와 은혜가 돌고 도는 세상

20대 시절에 도가의 경전에 나오는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이라는 대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원수로부터 은혜가 나오고 은혜로부터 원수가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삼십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요즘 신문을 보니까 비로소 이 말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경전 한 구절 이해하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여기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지는 단계이다.

진중권과 윤석열은 경전의 깊은 의미를 터득하게 만들어준 나의 선생님이다. 보수 논객 조갑제가 90년대 후반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전기를 쓴 적이 있다. 이때 진중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비평서를 써서 되받아 쳤다. 박정희와 보수 진영에 침을 뱉었던 진중권이 요즘에는 태극기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진중권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보수 진영 사람들이다.

정권을 비판하면 어디 가서 강연하기도 어렵다. 기업들은 정권 눈치를 보기 때문에 반정부 인사는 강연자로 부르지 않는다. 신문 연재 원고료야 얼마나 되겠는가. 강연료가 문제다. 평소에 알고 지냈던 진보 진영 어떤 교수는 진중권을 향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어 댔다. 윤석열도 그렇다. 박근혜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할 때는 진보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정권 초기에 적폐 청산한다고 칼에 피를 묻힐 때는 보수 인사들로부터 ‘인간 백정’이라는 욕을 먹었다. 윤석열의 칼을 맞고 보수 인사들의 목이 날아갈 때는 진보로부터 ‘우리 윤 총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은 어떻게 되었는가. 진보에게는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 은생어해가 되고 해생어은이 되는 상황을 매일 신문 지면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건 뭣인가? 삶이 코미디라는 말인가? 아니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분별(分別)에서 내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았다는 말인가. 은혜와 원수만이 아니라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더러움과 깨끗함, 위와 아래, 안과 밖, 어두움과 밝음의 관계도 이런 게 아닐까.

더 나아간다면 생과 사도 이런 관계일 수도 있겠다. 생에서 사가 나오고, 사에서 생이 나온다는 관계 말이다. 그렇다면 너무 한쪽만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한쪽만 죽어라 하고 붙잡고 있을 때 고통과 번뇌가 온다. 조중동에서 매일 어록을 받아 적고 있는 진중권은 1500원짜리 김밥 한 줄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인생이다.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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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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