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레반의 스포츠 정치, 크리켓으로 시작하나
◇ 탈레반의 스포츠 정치, 크리켓으로 시작하나
아프가니스탄 인기 스포츠인 남자 크리켓이 탈레반 집권 이후 첫 국제대회를 치른다.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열리는 ‘2021 크리켓 T20(트웬티 트웬티) 월드컵’이 무대다. 국제크리켓평의회(ICC) 랭킹 8위인 아프가니스탄은 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총 12개 팀)에 직행했고, 25일 예선 B조 1위 통과 팀과 첫 대결을 펼친다.
19세기 영국에 의해 전파된 크리켓이 아프가니스탄에 뿌리내린 것은 1990년대다.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 크리켓을 접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귀국하면서 널리 퍼졌고, 2001년에는 대표팀이 구성됐다.
이후 급성장한 아프가니스탄 크리켓은 2010년 처음으로 T20 월드컵에 나갔고, 이번 대회까지 총 5번 월드컵 무대에 선다. 2017년에는 국제크리켓평의회 106개 회원국 중 12개 나라에 국한된 정회원이 됐다. 정회원은 한번 경기에 3시간 정도 걸리는 T20, 하루가 걸리는 ‘원데이 인터내셔널’(ODI), 4~5일 걸리는 ‘테스트 매치’를 소화할 수 있는 나라다.
탈레반은 1996~2001년 첫 통치 때 스포츠 활동을 억압했다. 이슬람 율법에 바탕을 둔 사회 질서를 강요한 그들은 여자들의 스포츠 활동을 금지했고, 남자 스포츠에서도 상당한 통제를 가했다. 경기장을 처형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난 8월 재등장한 탈레반은 달라졌다. 새롭게 임명된 아프간 스포츠 최고 책임자는 외신에서 크리켓을 포함한 400개 종목의 스포츠를 허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프가니스탄크리켓협회는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 훈련 상황을 트위터로 알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크리켓대표팀을 이끄는 남아공 출신의 랜스 클루즈너 감독은 “탈레반이 협력적이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클루즈너 감독은 조만간 아랍에미리트 현지에 훈련 캠프를 차려 선수들을 직접 지도할 예정이다.
문제는 여성 스포츠다. 탈레반은 여자 크리켓대표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여자팀이 해체되면 남자팀을 친선경기에 부르지 않겠다는 압박이 국제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회원 자격도 박탈된다. 탈레반의 스포츠 정치가 크리켓을 통해 시험대에 섰다.
-한겨레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