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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6일 수요일

◇ 하동 화개면 탐방

◇ 하동 화개면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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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 차밭길 산책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올봄은 꽃이 피는지 지는지 모르고 지나갔다. 꽃피는 고을, 하동 화개면의 ‘십리벚꽃길’도 축제 없이 잔인한 봄을 보냈다. 열흘 동안 피어 있는 꽃은 드물어도 화개의 푸르름은 사계절 지속된다. 화개는 공식적으로 국내에 차나무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이다. ‘벚꽃’보다 ‘십리’에 주목하면 한국 차의 시원, 화개의 진면목이 보인다. 섬진강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거리가 대략 6km이고, 도로가 끝나는 의신마을까지는 또 8km를 더 가야 한다. 화개천을 가운데 두고 이어진 골짜기가 깊고도 아늑하다. 그 계곡을 형성하는 가파른 산자락 곳곳이 야생 차밭이다.

▶ 차 시배지에서 정금차밭까지 ‘천년차밭길’ 산책

화개장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가수 조영남의 영향이 컸다. ‘화개장터’ 노랫말만 보면 아랫말 하동 사람, 윗말 구례 사람에 삐걱삐걱 나룻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온 광양 사람,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산을 넘은 산청 사람까지 어우러져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시골장터 분위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지금의 화개장은 오일장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명성 때문에 관광객을 위한 시장에 더 가깝다.

수해를 막기 위한 제방은 점점 높아져 장터는 섬진강에서 분리됐고, 하천 북측에 형성됐던 시장도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측으로 이전하고 말끔하게 단장했다. 시장 초입에 기타를 든 조영남 동상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옛날 풍경은 장터 담장을 따라 전시한 사진으로나 볼 수 있다.

화개를 여행하는 이들은 대개 화개장터에서 십리벚꽃길을 따라 계곡 상류에 위치한 쌍계사를 돌아보고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화개의 진짜 매력을 보기 어렵다. 화개의 자랑이자 보물인 차밭은 계곡 양측 산허리에 있기 때문이다. 녹차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된다. 차 시배지에서 정금차밭까지 이어지는 ‘천년차밭길’을 걸으면 하동의 색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약 2.7km로 1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마저 부담스러우면 출발지와 종착지만 둘러봐도 좋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 차 시배지. 법향다원 이쌍용 차 명인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차를 죽로차라 부른다. 댓잎에 맺힌 이슬을 먹고 자란 차라는 의미다.

차 시배지는 이름대로 한국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 얕은 언덕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공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곳으로 2008년 한국기록원에 공식 등록됐다. 초입에 이러한 내력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듬성듬성 바위가 섞인 차밭을 거닐 수 있도록 산책로가 나 있다. 차와 관련한 글귀 25수를 새긴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그 뜻을 음미하며 걷는 것도 재미다. 쌍계사 방장 고산 스님이 남긴 글이다.

정금차밭은 정금마을과 신촌마을 사이 고갯길에 있어 전망이 시원하다. 아래로 굽어보면 화개천과 주변 마을 풍경이 이국적이고, 시선을 올리면 금방이라도 지리산의 우람한 능선에 닿을 듯하다. 하동군에서 내세우는 ‘한국의 알프스’라는 문구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이발하듯 가지런히 다듬은 차밭 고랑을 거닐면 어디서든 ‘인생사진’을 남겨도 좋을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산허리를 층층이 감싼 차밭 고랑은 자체로 조형미가 뛰어난 예술작품이다. 편안하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는 핵심 포토존이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