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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7일 목요일

◇ 홍수로 우사 탈출한 소, 천년고찰 사성암으로 간 이유는?

◇ 홍수로 우사 탈출한 소, 천년고찰 사성암으로 간 이유는?

◇ 홍수로 우사 탈출한 소, 천년고찰 사성암으로 간 이유는?

사람만 나라를 탈출하는 게 아니다. 물론 타의지만, 때론 소도 ‘망명’한다. 1996년 7월 대홍수 때 북한의 소가 임진강을 타고 한강 하류로 내려왔다. 당연히 소의 ‘탈북’이 관심거리이겠지만, 소의 수영실력(사진 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가 떠내려온 곳이 북한의 군사작전지역 후방에 위치한 민가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의 수영거리는 수십 ㎞로 추산된다. 그렇게 먼 거리를 헤엄칠 수 있는 건 물을 이용하는 소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말은 물을 거슬러 헤엄치려는 습성이 있어 홍수가 나면 지쳐서 죽지만, 소는 물살에 몸을 맡긴 채 흐름을 타는 까닭에 산다고 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인데, ‘우생마사(牛生馬死)’의 지혜를 일깨운다.

소의 그런 ‘도력(道力)’은 최근 물난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300㎜가 넘는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해 전남 구례의 많은 지역이 물에 잠긴 지난 8일, 우사를 탈출한 소 10여 마리가 이곳 고찰인 사성암(四聖庵)으로 도피했다(사진 아래).

백제 성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성암은 원효·의상·도선·진각 등 신라·고려시대의 고승들이 수도한 곳이라 예사롭지 않다. 해발 531m의 오산(鰲山) 정상 아래 자리한 사성암에 오르면,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의 장쾌한 전모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남도의 속살을 적시는 섬진강의 유장한 물굽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성암의 이런 내력과 절경이 소들을 이끈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들의 사성암 방문은 중국 송나라 때 곽암이 그린 십우도(十牛圖)를 연상케 한다. 십우도는 선 수행과 깨달음의 단계를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10개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주체는 동자승이다. 피부가 검은 색에서 흰 색으로 바뀌다가 마침내 형체마저 사라지는 소는 해탈의 과정을 상징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가 스스로 수행 도량에 찾아갔으니, 사람뿐 아니라 소를 비롯한 만물에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전국을 수마에 빠뜨린 올해 장마는 과거 어느 때보다 시련이 컸다. 그 와중에 경남 합천에서 익사 직전의 소 110여 마리를 구출하는 등 사람과 소의 오랜 인연을 확인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선인들이 소를 생구(生口·사람대접할 만큼 존중한다는 뜻)라고 부른 이유다. 소는 이에 매사에 신중하라는 ‘호시우보(虎視牛步)’, 매사를 우직하게 실천하라는 ‘우보만리(牛步萬里)’ 등 교훈으로 사람에게 보답한다. 사람과 소의 아름다운 공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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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도청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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