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밥상 10년 진행 최불암 “남은 막걸리 버려 뺨맞은 뒤, 뭐든 안 남기고 먹게 되더라”
"◇ 한국인의 밥상 10년 진행 최불암 “남은 막걸리 버려 뺨맞은 뒤, 뭐든 안 남기고 먹게 되더라”
",2011년 1월 거제도의 겨울 대구를 알리고 10년이 지났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이다. 노배우 최불암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지역의 향토 음식을 맛보는 이 방송은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교양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느릿하면서도 정겨운 그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요리와 지역에 얽힌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 KBS에 따르면 방송 기간 국내와 해외까지 이동 거리는 35만여㎞, 1400여 곳의 8000여 가지 음식을 선보이는 동안 프로그램을 거쳐 간 제작진은 100명이 넘는다. 여든을 바라보는 망팔(望八·71세)에 방송을 맡은 그는 이제 90세를 바라보는 망구(望九·81세)가 됐다.
그는 “이 나이까지 방송 일을 하며 복에 겨운 밥상을 받으러 다닌다. 전국의 우리 어머니들이 나 때문에 굽은 허리, 무릎 관절 아픈 것도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며 “10년 동안 받은 그 사랑을 어떻게 다 갚나. 방법을 아직도 못 찾고 있다”고 했다.
7일부터 4주에 걸쳐 방영되는 10주년 기념방송을 앞두고 5일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인의 밥상’을 정의하면.
“우리나라 밥상은 참 남다른 것 같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보면 밥상 대부분이 어려운 시절에 가족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가 궁핍한 식재료를 갖고 지혜를 짜내 만든 것이더라. 나의 어머니는 김치에 꼭 생선을 넣어서 담그셨다. 조기도 넣고, 낙지도 넣고 밴댕이도 넣고 제철에 나오는 싼 생선을 넣었다. 그게 익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 김치가 익으면 생선을 골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시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창 성장기였던 아들한테 고기를 먹일 돈은 없으니 그걸로 단백질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최불암의 밥상’에는 무엇이 있나.
“무짠지, 오이지를 좋아한다. 일곱 살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갓집에서 자랄 때 많이 먹었다. 무짠지가 밑천이 안 드는 반찬이다. 무를 소금에 절이기만 하면 된다. 가난한 살림살이 때문이었는지 외할머니가 무짠지를 그렇게 먹였다. 지금도 밥상에 무짠지가 있어야 한다. 입안을 시원하게 하고 밥맛을 나게 한다.”
-10년 방송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과 음식은.
“기억에 남는 건 음식보다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남원에서 추어탕을 촬영하던 때였던 것 같다. 맛을 보면서 ‘산초(山椒)’가 좋아서 추어탕도 맛있는 것 같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촬영을 마쳤는데 어르신이 동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가 내 손을 잡고는 ‘줄 게 없다’며 그 산초를 신문지에 정성스럽게 싸서 주더라. 그런 분들이 있어서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꼭 다루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가.
“북한 음식을 현지에서 못 다룬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송해 선생은 ‘전국노래자랑’이 평양 갔었다는 걸 가장 큰 자랑으로 삼는다. 우리도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만약 북한에 갈 수 있다면 황해도 해주를 꼭 가보고 싶다. 거기가 아버지 고향이다.”
그의 어머니(이명숙 여사)는 서울 명동에서 ‘은성’이라는 주점을 운영했다. 시인 김수영, 변영로, 박인환 등 단골손님인 당대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유명했다. 일찍부터 최씨가 문화에 눈을 뜬 계기이기도 했다.
-어머니 가게에 오간 문인들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
“문인들이 ‘은성’에 오면 그렇게 김치만 달라고 그랬다. 돈이 없어 안주를 시킬 수가 없으니까. 어머니가 11월에 김치를 담그셨는데, 큰 항아리 두 개에 담그시면 12월을 못 넘겼다. 그래서 나는 어디 가서 김치 더 달라는 말을 못한다. 어머니가 김치 떨어질까 봐 하도 노심초사하시던 걸 봐서다. 또, 단골 중에 술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변영로 시인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합격한 날 그분이 축하한다고 막걸리를 한 잔 주셨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잔을 돌려드리려다 술지게미가 남았길래 잔을 털었더니 대뜸 뺨을 때리며 호통을 치시는 거다. 귀한 쌀로 만든 술을 버렸다고. 그때부터 술이든 음식이든 남기지 않고 먹으려는 습관이 생겼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