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총리, 하토야마 총리 그리고 김종인의 무릎 사죄
◇빌리 브란트 총리, 하토야마 총리 그리고 김종인의 무릎 사죄
"1970년 12월 폴란드에 있는 유대인 추념비 앞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섰다. 독일 정상으론 전후 첫 방문이었다. 겨울비가 내렸고, 몇몇 성직자와 사진기자가 주변을 에워쌌다. 그때 화환을 놓은 브란트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다. 57세 브란트는 머리를 숙이고 30초쯤 침묵 속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것이 뒷날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된 바르샤우어 크니팔(바르샤바 무릎 꿇기)이다.
",브란트는 "나는 역사의 무게 앞에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치 수용소 생존자인 폴란드 총리가 감동을 받아 차 안에서 브란트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했다. 헝가리 방송은 "브란트가 무릎을 꿇었지만, 독일 민족이 일어섰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서독 언론은 비판적이었다. 여론조사 응답자 48%가 "브란트 행동이 과장됐다"고 비난했다.
세월과 함께 평가는 완전 달라졌다. 이젠 \20세기 독일 정치사에 힘과 용기와 아이콘을 보여준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브란트와 비슷한 \무릎 사죄\는 2015년 8월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가 옛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을 때 있었다. 그는 추모비에 헌화한 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그는 "진심으로 죄송하고 사죄한다"고 했다. 3년 뒤 하토야마는 경남 합천에도 찾아와 팔순 원폭 피해자들 앞을 일일이 무릎으로 옮겨 다니며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근년 들어 무릎 사죄가 드문 풍경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 때 여론이 급락하면 지역으로 달려가 단체로 무릎을 꿇는다. 뒤에는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현수막도 걸어놓는다. 노무현 정부 때는 탄핵 가결을 못 막았다며 열린우리당 의장이 무릎을 꿇었다. 물류 창고 화재 때도, 모 탤런트의 위안부 누드 파문 때도 책임자가 무릎을 꿇었다. 갑질 손님 앞에서 백화점 점원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영상도 있었다.
",그제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이 5·18 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었다. 검은 옷 차림에 흰 장갑 손을 앞에 모았다. 인상적인 사진이었다. 그는 "부끄럽다" "죄송하다"를 거푸 말하다 목이 멨다. 일어설 때 잠깐 비틀거렸다. \5·18 무릎 사죄\는 지난 40년간 보수 정당 대표로는 처음이다. 민주당은 \화제 전환용 쇼\라고 했지만, 김 위원장은 "반성의 첫걸음을 뗀다"고 했다. 복잡한 일도 훗날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될 때가 있다. \무릎 사죄\는 전제 조건이 없다는 뜻이다. 평가는 시간과 실천에 달렸다.
"-조선일보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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